시 109:17-18 저가 저주하기를 좋아하더니 그것이 자기에게 임하고 축복하기를 기뻐 아니하더니 복이 저를 멀리 떠났으며 또 저주하기를 옷 입듯하더니 저주가 물 같이 그 내부에 들어가며 기름 같이 그 뼈에 들어갔나이다
본문은 용서가 왜 필요한지를 알려준다. 억울한 피해자라 할지라도 가해자를 용서하지 못하여 마음이나 말로 저주하면 그 저주 자체가 본인에게 먼저 임하기 때문이다. 원한이나 적개심이 사무쳐서 저주의 강도가 심하면 그 저주는 저주한 사람의 내면부터 망가뜨린다. 저주가 저주를 말한 사람에게 먼저 물같이 스며 들어가기 때문이다. 저주의 세력이 활동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저주까지는 안해도 축복하기를 꺼리면 복은 가까이 오지 않는다.
이러기에 주님은 원수를 용서하고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권하셨다. 원수를 편애하셔서가 아니다. 용서와 축복을 생각하고 말하면 용서와 축복이 가까이 오기 때문이다. 반면 피해자라 할지라도 저주와 파괴를 말하면 저주와 파괴가 먼저 다가온다. 그게 영적 이치이기에 주님께선 원수갚는 것은 당신에게 맡기고 용사와 축복과 사랑을 풀어놓으시라 하신 것이다. 저주는 하나님의 방식이 아니다. 하나님 방식이 아닌 것은 불순종에 해당하며 그러기에 축복은 멀어진다.
사실 나도 하나님에게와 누군가에게는 얼마든지 용서의 대상이다. 나의 언행심사가 하나님과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아픔을 준 것은 헤아릴 수 없다. 나도 하나님과 사람에게 용서받아야 할 대상이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용서가 나에게 천국을 연 것처럼, 누군가를 향한 용서도 천국을 열게 한다. 반면 비용서는 지옥을 경험하게 한다. 하나님의 용서로 천국을 얻은 나이다. 천국을 풀어놓는 마음, 천국을 풀어놓는 말을 해야 한다. 늘 힘쓰는 일 중의 하나이다.
*사랑의 주님, 오늘도 용서와 축복을 풉니다. 저 또한 용서받고 축복받게 하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