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1:22-23 어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 또 어떤 자를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 또 어떤 자를 그 육체로 더럽힌 옷이라도 싫어하여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
의심하는 자들, 미혹의 불 가운데 있는 자들, 더러운 죄에 머문 자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대부분의 반응은 정죄 쪽에 기운다. 처음에는 안타까이 여기더라도 얼마 안가 방관 내지 은근한 정죄감을 가지는 쪽으로 기운다. 변화시키기가 쉽지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단번에 권면을 받아들여 옳은 길로 돌아오는 사례는 그렇게 많지 않다. 설령 그런 경우가 있었을지라도 그 이전부터 쌓여져 왔던 은혜가 드디어 흘러넘치는 지점에 이르렀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쌓이는 은혜가 중요한 이유이다. 가족이, 지인이, 친구가, 아니면 노방에서 이름모를 전도자가 진리를 전하며 아버지의 사랑의 품에로 불렀던 그 초청들이 쌓이고 쌓여서 마치 눈송이 가득 재인 나뭇가지에 단 하나의 눈송이가 얹혀져 임계점을 넘을 때, 갑자기 툭 꺾어지듯 영혼도 그렇게 꺾여져 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쌓임은 긍휼의 마음을 지닌 일상의 전도자들이나 바나바들을 통해 이루어진다. 유다는 거듭 강조한다. ‘긍휼히 여기라.. 긍휼히 여기라..’
그 마음이 바로 아버지의 마음이며 그 아들 그리스도의 마음이다. 바로 그 마음이 의심많던 나를 변화시켰고, 불 가운데 있던 나를 끌어내었으며, 더러웠던 나를 정화의 자리로 옮겨가게 했다. 내가 그 은혜를 입었으니 이제 그 긍휼을 나누는 자리에 서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나는 점점 더 아버지의 마음에 가까이 다가가게 되는 것이다. 나는 본문과 같은 상황에 처한 이들을 긍휼히 여기고 있는가. 그들을 불 속에서 끌어내고 있는가. 내 아버지는 탕자의 아버지시다. 늘 그 마음을 헤아리며 닮아가야 한다.
*하나님은 탕자를 기다리시고 품으시며 반지를 끼워주시는 그 아버지와 같은 분임을 압니다. 저도 그렇게 품어주신 줄 압니다. 그 마음을 따라 모든 영혼들을 긍휼히 여기게 하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