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 25:35 목자들은 도망할 수 없겠고 양 떼의 인도자들은 도주할 수 없으리로다
여기서 목자들과 양 떼의 인도자들은 나라의 지도자들을 가리킨다. 심판의 때에 그들은 피하려해도 피할 수 없게 된다. 심판을 자초한 주범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백성들을 멸망의 길로 이끈데 대한 대가를 치루어야 했다. 예레미야 당대의 지도자들만이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 이전부터 대물림된 죄의 유전도 있었지만 선한 선택을 하지 못한 책임은 각자가 져야 했다. 그러나 그 이전부터 쌓인 죄업을 최종적으로 걸머져야 했다는 점에서 마치 폭탄돌리기의 마지막 주자가 된 것과 같다.
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짐스럽다. 여러 사람의 운명을 결정짓는 영향력을 풀어놓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야고보는 선생이 되는 것을 말렸다. 약 3:1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예레미야 때의 지도자들은 피할 수 없는 하나님의 추적을 받았다. 그들은 심판의 사정권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나에게 하나님은 추적자이실까 시혜자이실까. 하나님은 목자와 인도자들에겐 일반인과는 다른 잣대를 대신다.
리처드 포스터는 순종의 최상의 자세로 단순성을 강조했다. 하라면 하는 것이고 하지 말라면 안해야 된다는 것이다. 주저한다는 것은 계산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고 사실상 불순종이 어른거린다고 본 것이다. 영성에서 단순성은 주님과의 관계의 질을 나타내는 바로미터이다. 나는 단순하게, 즉각적으로 순종하고 있는가. 나는 회중을 바로 서게 하고 있는가. 바울은 버림받을까봐 자기 몸을 친다고 했다. 구원문제가 아니라 신임문제이다. 바울이 스스로를 쳤다면 나는 더더욱 말할 나위없다. 스스로 치면 하나님이 치실 일이 없을 것이다. 바울이 지혜롭다.
*추적을 받는 것이 아니라 신임을 받는 인도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긍휼을 베푸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