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 12:1 여호와여 내가 주와 변론할 때에는 주께서 의로우시니이다 그러나 내가 주께 질문하옵나니 악한 자의 길이 형통하며 반역한 자가 다 평안함은 무슨 까닭이니이까
예레미야의 눈에 악한 자의 형통은 두 가지로 보였다. 하나는 국운이 기우는데도 여전한 기득권층의 허세와 바벨론과 같이 하나님을 믿지않는 강대국의 기세이다. 한 쪽은 하나님을 알아도 따르지 않고 한 쪽은 하나님을 모르는 데도 그 기세가 심상치 않아서이다. 이것은 뭔가? 하나님께 불순종함에도 기득권을 누림이 여전하며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데도 승승장구한다면 도대체 하나님을 믿음으로 얻는 유익은 무엇이란 말인가?
이런 질문의 관점은 그 자체로 세상에 경사되어 있음을 드러낸다. 기득권이나 강대국은 힘과 재물을 최고로 간주하는 세상의 산물이다. 강력한 권력과 많은 재물에 목적을 둔 물량주의적 관점이며 또 한편으론 거짓자아의 시위이기도 하다. 내면의 가치기준이 이 쪽에 머무르면 하나님과의 관계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변질되기 쉽다. 그런 점에서 예레미야의 질문은 아슬아슬하다.
악인의 길은 형통하게 보일 뿐이다. 속까지 형통한지는 아무도 모른다. 평안하게 보였지만 진짜 평안한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게 보일 뿐이다. 돈과 힘의 치장은 단지 장식 뿐임에도 스스로만이 아니라 보는 이마저도 착각하게 한다. 하나님의 섭리는 간단하다. 회개하며 진리로 돌이키지 않는 한 기득권도 우상나라도 결국은 다 망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악인에게 진짜 형통이나 진짜 평안은 없다. 돈과 힘이라는 포장지에 속고 있다고 보면 된다.
악한 자의 길을 가면 안된다. 의인의 길을 가야 한다.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를 붙들고 거짓자아를 극복하며 영생을 소망하는 자가 의인이다.
*말씀기도
세상 기세가 당당하게 보일지라도 그들의 속은 흔들리는 삼림이며 사실 불안상태임을 분별케 하사 눈에 보이는 것으로 흔들리지 않게 하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