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7:31


렘 7:31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 도벳 사당을 건축하고 그들의 자녀들을 불에 살랐나니 내가 명령하지 아니하였고 내 마음에 생각하지도 아니한 일이니라

유다백성들은 이방의 우상을 섬길 뿐만 아니라 자녀를 제물로 불에 태우는 인신제사도 서슴치 않았다. 하나님께서 명백하게 금하신 일이었지만 그들사이에 거세게 몰아친 죄의 대세는 하나님의 명령조차 무시하게 만들었다. 하나님은 단호하게 그것은 내가 명령하지 않은 일이고 심지어 내가 생각한 일도 아니었다 하신다.

깊은 실망감이 배여있는 탄식이다. 죄의 물결이 거세지면 하나님조차 생각하지 않은 일들이 벌어진다. 전지하신 하나님께서 모르시는 것이 있으랴마는 그 정도로 주저없이 죄로 치닫는 인간의 욕망이 무섭다는 뜻이다. 인간의 이기적인 욕망은 하나님의 명령을 저버리고 자식 조차 제물로 삼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이런 정도의 죄의 물결은 하루 아침에 일어나지 않는다. 유혹의 작은 돌멩이가 일으키는 파문으로부터 시작해서 점점 더 강렬한 일렁임이 있게 한다. 그러다가 분별력 자체가 죄와 탐심에 덮여버리는 돌이킬 수 없는 지점에 이르러버린다. 매일매일 물두멍 앞에서 영혼의 수족을 씻지않으면 얼마든지 실족할 수 있는 존재가 나임을 기억하며 오늘도 수족을 살핀다.

*말씀기도

제 마음을 살피사 죄와 탐심의 씨앗을 철저히 뽑아내 주시옵소서.

LIVING LIFE 바로가기

#정재우Joshua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욥기 10:8

욥 10:8 주의 손으로 나를 빚으셨으며 만드셨는데 이제 나를 멸하시나이다 6백만 명의 유대인들이 나치 수용소에서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처참하게 죽임당했을 때, 반응이 여러가지였다. 우선 두드러진 것이 ‘신 죽음의 신학’이었다. 신은 죽었다는 것이다. 신이 살아있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에서 시작한 생각이다. 사실상 신을 버

욥기 9:27~28

욥 9:27-28 가령 내가 말하기를 내 불평을 잊고 얼굴 빛을 고쳐 즐거운 모양을 하자 할지라도 생명의 내 모든 고통을 두려워하오니 주께서 나를 죄 없다고 여기지 않으실 줄을 아나이다 토설은 매를 맞으면서도 엄마의 옷자락을 붙잡는 우는 아이의 마음이다. 엄마 이외에 다른 누가 없기 때문이며, 아울러 엄마만한 다른 누가 또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엄마 밖에

욥기 8:6-7

욥 8:6-7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반드시 너를 돌보시고 네 의로운 처소를 평안하게 하실 것이라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빌닷의 말은 그 자체로 구구절절 그른 데가 없다. 그러나 그 말이 권선징악 개념에서 오는 판단에 바탕한다는 점이 문제다. 원칙적으로 판단은 사람의 소관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관이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먹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