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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2:13


렘 2:13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유다의 백성들이 저지른 죄의 본질은 하나님을 버린 것이다. 하나님을 대적한 것은 아니었다. 버린 것과 대적한 것은 다르다. 그래서 대적하지 않으면 사이가 괜찮을거라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 대적하지 않아도 함께 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유다 백성들은 함께 하지 않는 것이 버리는 것과 같은 것임을 깨닫지 못했다.

마 12:30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왕에게는 충성 아니면 반역, 둘 중의 하나다. 둘 사이에서 저울질하는 경우가 있는데 눈치빠른 왕이라면 그런 사람에게 신임을 주지 않을 것이다. 가까이 두어도 이용하는 선에서 그칠 공산이 많다. 유다는 성전에서 끊임없는 제사가 드려지고 있음에 마음을 놓았다. 여전히 하나님이 자기 편이 되어줄거라 생각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그 계산이 잘못된 것임을 밝히고 계신다.

성전제사는 형식이었고 정작 마음은 세상과 우상에 두었다. 강대국의 위용을 부러워했고 그들의 영화를 동경했다. 그리고는 그들이 섬기는 우상에게 다가갔다. 유다가 한발짝 씩 우상에게 다가가면 또 한발짝 씩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는 일이 반복되었다.

진정한 성취의 길을 가자. 예수님과의 연합으로 가는 데스티니와 비전의 길이다. 남 부러울 것 없는 값진 길이다. 생수가 강을 이루게 하는 길이다. 나는 그 길을 가련다. 다만 연합이 덜 되어 부끄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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