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마가복음 15:34


막 15:34 제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겟세마네에서 마시기를 꺼리셨던 그 쓴 잔에는 죄의 삯만이 아니라 ‘하나님께 버림받음’이라는 초유의 고통도 담겨 있었다. 성자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사랑으로 하나되었던 성부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는 이 저주가 예수님에게는 그 무엇보다 혹독한 고통이었다. 피조물에 불과한 인간은 이 고통의 깊이를 대충이라도 헤아릴 수 없다. 아마도 인간이 추정할 수 있는 가장 극한의 저주보다도 훨씬 더 깊은 심연의 고통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예수님은 나를 위해 이 고통을 걸머지셨다.

이 대속의 은혜가 없었다면 나는 ‘하나님께로부터 영원히 버림받음’의 형을 면하지 못했을 것이다. 성경은 그 고통을 ‘영영히 꺼지지 않는 불못에서의 고통’으로 묘사한다. 그곳은 빛이 없는 흑암의 처소이며 희망이 없는 곳이다. 세상 나라에서도 왕을 대적한 반역자는 끝장이 나고 그 가족들은 종이 되어 온갖 고초를 겪는다. 그 왕이 죽거나 정권이 바뀌면 혹시 복권의 여지가 있거니와 그나마도 기약할 수 없다. 영원한 왕을 대적한 반역자는 영원히 옥에서 풀려날 수 없다. 십자가의 은혜는 이 어마어마한 형을 면하게 한다.

예수님은 죽기 위해서, 버림받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 십자가에 달리시기까지 어느 누구도 예수님의 마음을 온전히 헤아린 사람이 없었다. 제자들도 십자가 사건 이후 성령을 받고서야 그 깊이를 깨달았다. 오늘 나는 예수님의 마음을 온전히 헤아리고 있다고 할 수 있는가. 예수님이 겪으셨던 ‘하나님께 버림받음’의 깊이를 헤아리며 예수님에게 감사와 위로를 드리는 가난한 심령이 있는가. 옥합을 깨뜨린 여인을 향한 주님의 마음이 기억난다. 나는 주님께 그런 마음을 가지게 하고 있는가.

*말씀기도

끊임없이 고개를 쳐드는 이 자기중심성을 꺾고 주님께 깊은 위로와 감사를 드리는 가난한 영혼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도와주시옵소서.

 

LIVING LIFE 바로가기

#정재우Joshua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삼상 22:14 아히멜렉이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왕의 모든 신하 중에 다윗 같이 충실한 자가 누구인지요 그는 왕의 사위도 되고 왕의 호위대장도 되고 왕실에서 존귀한 자가 아니니이까 아히멜렉이 사울에게 진언하고 있다. 추상같은 때에 목숨을 건 일이었지만 진실을 이야기한다. 모두가 왕의 광기가 두려워 입을 다물고 있을 때였다. 이 진언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삼상 22:2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 다윗을 중심으로 아둘람공동체가 세워진다. 환난 당한 자들과 마음이 원통한 자들로 인생의 출구가 필요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다윗에게서 그 출구를 보았다. 그래서 정치적으로 수세에 몰리는 다윗임에도

삼상 20:42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우리 두 사람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영원히 나와 너 사이에 계시고 내 자손과 네 자손 사이에 계시리라 하였느니라 하니 다윗은 일어나 떠나고 요나단은 성읍으로 들어가니라 기득권을 포기한 우정, 아버지와의 분리를 각오한 우정으로 다윗은 살았다. 결국 이 우정이 훗날 다윗을 왕위에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