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10:51 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맹인에게 무엇을 원하느냐 물으시다니.. 답이 뻔하지 않는 질문 아니신가 할 수 있다. 처음엔 그렇게 생각되었다. 그러나 그 뻔한 질문을 굳이 하셨다는 사실이 궁금해졌다. 베데스다 연못가의 38년 된 병자에겐 ‘네가 낫고자 하느냐’ 물으셨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다 이유가 있으셨다. 베데스다의 병자에게선 치유를 향한 소망을 가지고 있는지를 확인하셨다. 바디매오에게선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가늠해보고 싶으셨던 것으로 보인다.
통산 거지는 돈 한 푼을 구한다. 조금 나은 경우 돈다발을 원할 수 있다. 그게 사람이 할 수 있는 전부이기 때문이다. 반면 예수님에게는 보게 해달라 청한다. 아무에게나 할 수 없는 요청이다. 초월적 능력을 지닌 자에게만 할 수 있는 부탁이다. 예수님은 바디매오의 답에서 당신을 향한 믿음을 보았다. 그리고 그 믿음에 응답하신다. 예수께서 ‘보거라’ 하시지않고 ‘네 믿음이 구원했다’라고 말씀하신 이유이다. 그런 믿음이라면 맹인 아니라 어떤 문제라도 해결받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기도하는 것과 믿음이 있는 것은 별개인 경우가 많다. 믿음없이 기도하는 경우가 적지않기 때문이다. 걱정하면서도, 의심하면서도 절박하기에 기도하는 경우는 많다. 남의 간증이나 체험을 의식하면서 내게도.. 하면서 기도해보는 경우도 적지않다. 절박함이나 소원은 있지만 주님을 감복시키는 믿음은 없다. 바디매오는 예수님을 감복시켰다. 당신은 맹인의 눈을 뜨게 하고 죽은 자도 살리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 믿음이 예수님에게 전해진 것이다.
문제로부터, 상황들로부터 질문을 받을 때가 많다. 한결같이 너는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니.. 라는 것이었다. 거기에 정답을 말하지 못한 경우가 한 두번이 아니었다. 이건 이래서, 저건 저래서.. 그래서 주님에 대한 신뢰를 보이지 못한 일들이 부끄럽게 다가온다. 그러고보니 지금도 또 나를 둘러싼 환경들은 내게 질문하고 있다. 너는 주님에게 어떤 답을 할래.. 하고 말이다. 절박함이나 소원을 넘어서야 한다.
*말씀기도
주님 저도 아름다운 영성공동체, 능력있는 회복공동체가 세워지는 것을 보고싶습니다. 주님께서 저와 은정을 마음껏 쓰시는 모습을 보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