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4:38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큰 풍랑이 배를 타격하는 위험천만한 상황에서도 예수님은 주무셨다. 말그대로 주무신 것이다. 제자들은 죽게 되었다고 난리를 칠 때 주무셨다. 가족들이 죽게 되었다고, 성도들이 큰 일 났다고, 친구나 지인들이 이제는 끝났다고 아우성치는 상황이 내게 닥쳤을 때 나는 어떻게 반응할까? 생각하기도 부끄럽다. 죽기까지는 안되어도 망신스럽거나 낭패를 보거나 고난을 당하는 상황에 내몰릴 때는 또 어떨까? 그 역시 생각하기도 부끄럽다.
예수께서 그 와중에도 주무실 수 있었던 두 가지를 추정한다면 하나는 아버지를 신뢰하심이었을 것이고, 또 하나는 마음에 거리낌이 없으셨을 터이다. 둘은 같은 맥을 지닌다. 아버지 앞에서 신실하게 사셨기에 아버지와 하나..라는 믿음에서 오는 안정감이 있었을 것이고, 책망받으실 것이 없는 까닭에 어떤 공격에도 겁나지 않으셨을 것이다. 이 둘이 구비되면 하나님 외에는 천하에 겁나는 것이 없게 될 것이다. 나중에 유라굴로라는 광풍 가운데서 바울이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문제가 문제이긴 하지만 더 문제는 하나님과의 관계의 질이며, 신앙적 삶의 질이다. 아버지와 연합하며 구별된 거룩의 길을 간다면 두려움은 사라질 것이다.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어 쫓는다. 내 안에 크든 작든 두려움이 존재한다면 두 가지 경우에서 제 발 저리는 부분이 있다고 봐야 한다. 인생을 살면서 여러 곡절을 겪는 과정에서 피해자가 되기도 하고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피해를 입었을 땐 피해의식에서 오는 두려움이, 가해했을 때는 죄의식에서 오는 두려움이 스스로 맥을 못추리게 한다.
지금부터라도 인격적 연합의 은총을 구하며 거룩으로 구별된 삶을 살아야한다. 큰 풍랑 중에서도 결국은 반석처럼 버티며 돌파를 해내게 될 것이다.
*말씀기도
예수님처럼 저도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다.’라고 말 할 수 있게 하시옵고, 세상과 구별된 길을 꿋꿋이 걷게 하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