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 21:12-13 선지자 엘리야가 여호람에게 글을 보내어 이르되 왕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네가 네 아비 여호사밧의 길과 유다 왕 아사의 길로 행하지 아니하고 오직 이스라엘 왕들의 길로 행하여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이 음행하게 하기를 아합의 집이 음행하듯 하며 또 네 아비 집에서 너보다 착한 아우들을 죽였으니
엘리야는 북왕국 전담 선지자였다. 그런 그가 남유다왕에게 예언을 담은 특별서한을 보낼 정도로 남유다의 영적타락은 심각했다. 아마도 아합과 이세벨의 딸로 인한 폐해를 의식했을지도 모른다. 선지자로서 지명도가 높았던 엘리야의 개입은 하나님의 경종이었다. 한마디로 빨리 돌이키라시는 경고였다. 니느웨백성도 돌이키면 용서하신 하나님이시다. 죄악보다 더 심각한 것은 회개할 줄 모르는 마음이다.
죄악에는 관성이 있다. 치우치다보면 눈덩이가 굴러 내릴수록 커지는 것처럼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어느 시점부터는 하나님도 그냥 내버려 두신다. 심판과 재앙은 피할 수 없다. 주변이 격동하면 먼저 자신을 살펴야 한다. 성경가운데서 제일 섬뜩한 구절이 롬 1:24이라 생각한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내버려두신다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저주이다.
묵상하는 시간은 구약시대로 치면 선지자 앞에 서는 시간과 같다. 회개와 각성을 통해 죄와 저주의 관성에서 축복의 관성으로 흐름을 바꾸게 한다. 말씀 묵상과 실천이 축복의 길이다. 그 과정에서 성령님은 세상과 죄의 관성을 거스르는 영적인 힘을 공급하신다. 오늘도 행여 말씀에서 벗어난 부분을 그대로 내버려두고 있지는 않은지 살핀다.
*말씀기도
저조차도 제 삶에서 내버려 두고 있는 것은 없는지요. 내버려 두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는 것은 없는지요. 죄와 세상의 관성을 분별하고 거스를 내적 힘을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