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 27:11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
지중해를 건너는 호송을 맡은 백부장 율리오는 항해가 위험하리라는 바울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았다. 겨울을 지내기가 한결 편한 뵈닉스로 가자는 선장과 선주의 말이 더 믿었기 때문이다. 선장과 선주는 상식과 경험을 대표한다. 항해에 관해서는 바울같은 율법학자 출신보다 바다에서 잔뼈가 굵은 선장의 말이 진리처럼 여겨진다. 이들은 바울의 말을 듣지 않은 까닭에 많은 곤욕을 치루게 된다.
주님의 음성은 상식과 경험을 당연히 능가한다. 그래서 주님의 음성이 떨어지면 그대로 순종하는 것이 상책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상식과 경험의 도전을 받게 되는데 대부분 이 대목에서 발목 잡히는 경우가 많다. 육신을 입은 존재로서 보이는 환경의 영향을 더 많이 받게 되기 때문이다. 사실 바울이 아무 조짐이 없는 상태에서 경고를 한 것 자체가 믿음의 행위였다. 바울은 영통한 사람이었다.
세상은 경험과 상식을 따라간다. 그 경험과 상식이 말씀이나 성령의 감화에 어긋나지 않을 때는 얼마든지 수용가능하다. 그러나 주님의 이끄심에 맞지 않을 때 우리의 선택은 하나여야 한다. 바울은 죄인의 혐의를 받고 호송당하는 입장에 있었기에 의견을 말하는 선에서 그칠 수 밖에 없었다. 바울의 말을 거부했던 백부장과 선장, 선주는 대가를 단단히 치루어야 했다.
신앙의 길을 가더라도 성령의 감화를 따라가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교회를 다니지만 상식과 경험을 더 존중하는 사람도 있다. 한 공동체 내에서도 각각의 형태가 공존할 수 있는데 상식과 경험으로 성령의 감화를 밀어낼 경우 그 공동체 역시 어려움을 피하기 어렵다. 리더가 중요하고 주류가 중요한 이유이다. 내가 그 시점에 그들과 함께 있었다면 선장이나 선주의 말을 따랐을까? 바울의 말을 따랐을까?
*말씀기도
은정의 리더, 은정의 주류는 상식과 경험보다도 주님의 음성이나 성령의 감화를 좇는 영통한 사람들이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