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 17:18 어떤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새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 말쟁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냐 하고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부활을 전하기 때문이러라
아테네에 이른 바울은 당대의 철학자들과 논쟁을 벌였다. 철학의 본질은 질문을 던지는데 있다. 답을 구하려 하지만 답은 줄 수 없는 딜레마를 가지고 있다. 답을 추구하는 것은 답이 아니다. 잠정적인 답을 말하지만 궁극적인 답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오히려 철학자들이 잘 안다. 좋은 질문, 치밀한 질문을 할 수 있지만 거기까지다. 답은 오직 하나님에게 있다. 그래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면 정답은 알 수 없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아테네에 갔다가 쟁론을 하게 된다. 바울 역시 당시로서는 뛰어난 수사학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 로마서를 보면 그의 탁월한 변증 실력이 여지없이 드러난다. 예수님이 당신의 십자가의 의미를 풀어 줄 사람이 필요하셨는데 당신을 공격했던 바울을 택하신다. 그 정도로 바울은 인재였다. 그러나 아테네에서 바울은 쓴 맛을 본다. 복음은 선포하는 것이지 설득하는게 아니라는 사실을 이 때, 절감했다.
선포가 먼저이고 변증은 그 다음이다. 믿음은 이해에서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말이 있다. ‘이해함으로 믿을 수는 없지만 믿으면 이해하게 된다.’ 믿음으로 영적인 감각이 깨어나야 비로소 영적인 진리를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바울의 아테네 선교는 쓰린 기억이 됐지만 큰 교훈이 되었다. 이후 그는 지혜의 권하는 말로 아니하고 전적으로 성령의 능력을 힘입게 된다.
고전 2:4-5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말씀기도
효과적인 복음전도는 담대한 선포와 확신에 찬 간증에서 우러나오는 것임을 기억합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사로잡으사 모든 관계에서 힘있게 복음을 선포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