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 16:6-7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당시 아시아는 우상숭배로 가득한 흑암의 천지였다. 이제 교회가 처음 세워지기 시작한 때이니 구원받아야 하는 영혼들은 천지에 가득했다. 그리고 바울이야말로 소아시아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 아닌가. 그보다 더 적합한 연고지가 또 어디 있겠는가. 더우기 말씀을 전하는 일은 예수님의 지상명령이었다. 아시아 사역을 접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런데... 이게 사람의 생각이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바울이 아시아를 접고 마케도니아, 즉 지금의 유럽으로 건너가기 원하셨다. 바울은 유럽에 대해선 생각도 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달랐다. 하나님은 그가 방향을 틀기 원하셨다. 바울은 신앙상식에는 충실했지만 정작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에는 실패했다.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고, 이방선교에 대한 부르심을 받았지만 그 과정 역시 주님의 주권하에 있음을 기억하며 이끄심을 구해야 했다. 내가 지금 잘 가고 있는건지, 더 알아야 하는 것은 없는지... 특히 현재 하는 일에 열매가 보이지 않을 때 분별이 필요하다. 인내가 필요한건지, 더 깨달아야 하는 것은 없는지 등에 대해서다. 성령이 막았으니 진도가 나갈리 없었을 것이다. 이게 뭔가... 할 때 하나님은 바울에게 꿈을 통해 알려주신다.
사람의 생각이 앞서면 영적인 일을 하더라도 혼적 판단을 한 것과 다름없다. 바울은 꿈을 보고서야 영적 판단을 하게 된다. 아, 이런 일이 있을 수도 있구나 했을 것이다. 주님 일을 하면서도 주님의 생각과 다른 길을 갈 수 있는 것이다. 그간 수 십년에 걸친 신앙과 사역의 길을 걸어오면서 나에게 숱하게 벌어졌던 일이기도 하다. 지금 내가 ‘들음의 영성’을 간절히 갈망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말씀기도
성령님, 제가 아둔하여 영적 분별을 놓칠 때가 많았음을 아시나이다. 내 생각과 주님 생각을 잘 구별하게 하시고 온전히 주님 생각을 감지하여 주님의 계획과 뜻을 이루어 갈 수 있도록 영적인 민감함을 허락하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