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 2: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오순절에 강림하신 성령님께서 일으키신 초자연적 역사는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으며 마음을 열어 복음을 받아들이게 했다. 갈릴리 어부 출신이었던 제자들의 입에서 외국어방언이 터지지 않았다면 유대인들은 여전히 제자들을 적대적으로 대했을 것이다. 그들은 그 외국어 방언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큰 일을 들었다. 행 2:11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아마도 그들은 그 순간 어찔했을 것이다. 하나님이 아니고는 이런 일 하실 분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고 성령충만한 베드로가 전한 복음에 부딪히면서 저항의 벽은 무너졌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위로부터 내리는 능력을 덧입을 때까지 예루살렘에 머물라 하신 것은 성령의 권능이 아니고는 철벽같은 사람의 마음문을 열 수 있는 길이 없음을 아셨기 때문이다. 현대교회는 능력보다 추억을 많이 지닌 교회가 되었다. 사도행전에 기록된 성령역사에 대한 추억들, 한 때 돌풍같이 일어났던 부흥운동에 대한 추억들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전의 추억을 오늘의 위안으로 삼는데서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사실이다. 지금도 그 때의 권능은 여전히 필요하다. 물론 그 때보다 많은 교회들과 교인들의 존재가 뭔가 있음을 어느 정도는 느끼게 하지만 심령을 찌르듯 파고들어 부복케 하는 성령의 역사에 필적하지는 못한다.
십자가에 못박힌 주와 그리스도.. 상식적으로는 모순인 이 문장은 성령의 깨우침 아니면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이다. 어떻게 주와 그리스도가 되는 존재가 처절한 십자가에 속수무책으로 매달린다는 말인가 하면서다. 영적인 실상과 영적인 세계를 열어놓는 성령의 조명이 없다면 복음을 능력있게 제시하는 것도 어렵고 어찌할꼬 하면서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도 어렵다. 말씀과 성령은 함께 가는 것이다. 이 시대가 말씀은 넘치는데 성령의 역사는 약해지고 있다. 말씀을 알아도 아는 대로 행하지 못하고 말씀을 들어도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말씀기도
은정에 성령의 권능을 부어주세요. 은정에 말씀의 은혜를 부어주세요. 말씀과 성령의 통로가 되게 하셔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드러나는 역사가 넘치게 해주세요. 은정을 긍휼히 여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