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43:4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당시 야곱, 즉 이스라엘의 현실은 고달팠다. 우상숭배로 징계를 받고 이방나라의 포로가 되었기 때문이다. 모두는 아니라도 대부분이 1계명과 2계명을 어기는 범죄를 저질렀다. 그렇게 되면 나머지 계명들도 우습게 보게 된다. 경건은 멍에처럼 간주되고 세상 것이 더 좋게 보이면서 하나님과의 관계는 서서히 금이 간다. 그렇게 벌어지기 시작한 금이 결국은 파국을 불러온 것이다.
이렇게 되면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선지자들을 보내 그토록 권했건만 돌아오지 않은 이유이다. 징계가 왔고 고난을 겪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징계였다. 유기, 즉 버린 것이 아니다. 앗수르나 바벨론은 버리는 카드다. 그들에겐 반전의 기회를 주는 약속이 없다. 이스라엘은 달랐다. 그들에겐 하나님의 사랑이 있었다. 다른 민족들이 자기의 죄로 망할 때 다시 재기하게 하시며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받는다는 것은 특권이다. 오늘 본문은 그런 특권이 이스라엘에게 있음을 알려준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에게 이런 은혜가 주어졌다. 대속의 은혜로 흰눈처럼 죄사함받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은혜이다. 내가 이런 은혜를 입은 것은 오직 주님의 사랑 때문이다. 그 분은 나를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신다. ‘정재우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정재우를 사랑하였은즉...’ 나를 향한 나 자신의 관점은 어둡다. 부끄럽다. 지금은 그렇다. 그러나 천상에서의 나는 다를 것이다. 그리스도와 같은 영광의 형상으로 변화하여 세세토록 나라와 제사장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할 때가 이를 것이다. 아마도 하나님은 그 때를 기다리며 지금의 나를 참고 용납하시지 싶다.
*은정 가족들에게
하나님은 여러분 각자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십니다.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이 사랑에 잡혀 소명의 노래를 부르는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