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큐티 03.15ㅣ고후 8:9


고후 8: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대속의 은혜는 지옥행 면제와 천국입장으로 끝나지 않는다. 짧지만 이 땅에서의 삶의 패턴변화와도 직결된다. 가난의식에서 부요의식으로의 의식의 변화이다. 진정한 부요는 물질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그것은 의식에서부터 시작한다. 의식이 가난하면 현실은 부요해질 수 없다. 의식이 부요해져야 가난한 현실을 변화시켜 나갈 수 있다. 아담의 저주 아래 갇힌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는 그 저주의식을 거두어내지 못한다. 인간의 의식이 부정적인 멍에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유이다. 이 멍에를 꺾으신 분이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은 우리로 부요케하시기 위해 가난을 대신 걸머지셨다. 그 명백한 대속으로 인해 우리는 부정적인 저주의식을 털어내고 축복의식을 대입할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의식에 변화가 일어나면 현실도 따라 움직이는 것이다.

예수께서 가난을 걸머지셨다. 우리가 계속 걸머질 이유가 없다. 원리적으로 이런 엄청난 대속의 부요가 이미 우리에게 주어졌지만 아쉽게도 우리는 이를 잘 누리지 못한다. 저주의식의 끈질긴 저항 때문이다. 대속의 원리에 대한 머리의 지식이 마음을 차지하지 못한 까닭이다. 여전히 저주 아래 깔린 환경의 영향을 더 받는 것이다. 몸이 출애굽을 했어도 마음이 출애굽되지 못하여 광야에서 고생한 이스라엘과 같은 형국이다. 이 구절에 대한 진정한 아멘은 지식의 차원이 아니라 마음 속에서 대속의 부요에 대한 확신이 자리잡힐 때 가능해진다. 아브라함은 롯이 먼저 좋은 땅을 택할 때 개의치 않았다. 네가 좌하면 내가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내가 좌할 것이다.. 라는 배짱은 네게 복을 주어 네가 복이 되게 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에 기인했다(창 12:2).

하나님의 약속을 붙든 아브라함 자체가 복이 되어 환경을 바꾼 것처럼, 우리를 위해 가난을 걸머지시고 예수님의 대속을 붙들면 하나님의 부요가 흐를 수 있다. 하나님의 진리와 약속은 우리의 마음을 바꾸어 부요의식을 가지게 하고 그 부요의식은 환경과 운명을 뒤집는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을 축복하시는 방식이다. 이 명백한 진리를 바탕으로 가난의식과 저주의식을 버리고 부요의식을 가지자.

*은정 가족들에게

현실보다 의식의 변화가 우선입니다. 의식의 변화는 마인드컨트롤 정도로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진리를 붙들고 환경과 저주의식의 도전을 물리쳐야만 일어납니다. 이 과정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끈질긴 싸움일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 배여있는 부정적 사고와 저주의식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부요한 자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을 헛되이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정재우Joshu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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