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후 3:9 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
정죄의 직분은 율법을 말하고 의의 직분은 은혜를 말한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지만 은혜는 하나님의 의를 덧입게 하기 때문이다. 출애굽의 기적으로 얻을 수 있었던 율법보다 십자가의 은혜로 얻은 은혜가 더 값지다는 뜻이다. 사실 율법도 중요하다. 율법이 아니면 어떤 것이 죄인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율법은 하나님의 의의 기준이 무엇인지를 알려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그러나 율법이 구원을 주지못한다는 점에서 약점이 있다. 죄가 무엇인지는 알게 하지만 죄를 짓지않게는 못한다는 말이다. 율법 앞에서 인간은 절망에 빠진다. 구원에 필요한 하나님의 기준이 무엇인지는 알았는데 그걸 완벽하게 지킬 수 없는 부패한 본성을 자각하기 때문이다.
고후 3:7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율법 조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 때문에도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율법을 전수받은 모세의 얼굴에는 광채가 빛났다. 출 34:30 ‘아론과 온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를 볼 때에 모세의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남을 보고 그에게 가까이 하기를 두려워하더니’ 하나님의 영광스런 임재 안에 있었던 까닭이다. 자꾸 찰톤 헤스톤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런데 바울은 이 영광보다 복음으로 말미암은 은혜의 영광이 더 귀하다고 말한다. 결과적으로 율법은 정죄하고 죽이는 기능을 하는데 비해 복음은 구원받게 하고 살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후 3:6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
나는 영광이 더 넘치는 의의 직분을 감당하고 있는 것이다. 갈라진 홍해나 시내산의 불보다도 더 영광이 넘치는 살리는 영의 은혜를 입은 것이다. 시내산보다 갈보리동산이 더 값진 이유이다. 십자가와 성령이 아니었으면 인간은 바리새인처럼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듯 자기 의로 착각하며 살았거나, 율법 앞에서 절망에 빠져 체념의 물결에 휩쓸렸을 것이다. 나는 영광이 더 넘치는 은혜의 시대를 살고 있다. 다시 감사를 회복하고 살리는 이 직분에 충성해야겠다.
*은정 가족들에게
갈라진 홍해나 시내산의 불도 귀하지만 십자가와 성령의 역사는 더 귀합니다. 삼위의 하나님께서 직접 움직이시고 이루신 일이기 때문이며 구원하고 살리는 열매를 주기 때문입니다. 은혜시대를 감사하며 누리며 전하는 일을 이루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