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15:37-38 또 네가 뿌리는 것은 장래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맹이 뿐이로되 하나님이 그 뜻대로 그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작고 까만 씨앗을 뿌렸는데 예쁜 꽃을 보게되고 탐스런 열매를 거둔다. 일상같지만 또한 기적이다. 어떻게 변변치않은 모양의 씨앗이 그렇게 화려하고 풍성한 결실로 나타날 수 있단 말인가. 생명이 역사하니 그렇게나 다양한 작용이 나타나면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만물이 존재하는 도처에 하나님의 영광과 섭리가 하나님의 존재증명이라도 하듯 데모를 벌이고 있는 셈 아닌가. 마찬가지로 부활의 생명이 역사하면 썩어질 육신이 신령한 몸, 그것도 그리스도와 같은 영광의 형상으로 변화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부활의 신비는 그렇게 생소하지 않은 것이다. 장차 우리가 그 분과 같은 형상으로 변화되어 천상을 거닐 때, 지금 우리가 우리 주변의 꽃과 열매를 보며 느끼듯 부활의 신비를 거룩한 일상으로 느끼는 날이 오게 될 것이다.
이런 신비한 변화가 오게 하려면 씨앗은 죽어야 한다. 죽으면 많은 열매를, 아름다운 꽃을 보게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죽으면 나를 통해 많은 열매와 아름다운 꽃이 피어날 것이다. 죽지않으면?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다. 내가 죽는만큼 주님께서 사시고 주님께서 나타나신다. 주님께서 나타나시지 않는다면 내가 막고 있는 것이다. 어제 기도가 죽는 길이라 했다. 사람은 독립성과 활동성이 강해서 기도를 어색해한다. 내가.. 열심히 뛰어야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잃어버린 인간의 전형이다. 십자가의 은혜로 아버지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달라야 한다. 아버지에 대한 전적인 의존이 있어야 한다. 그 의존이 기도로 나타나는 것이다. 기도는 타락한 본성을 극복해야 깊어진다. 기도는 깊어질수록 육성을 죽이고 자기중심성을 죽인다. 기도가 잘된다는 것은 엄청난 은총이다. 내 영성에서 진정한 기도의 퍼센테이지는 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를 분별케한다.
*은정 가족들에게
까만 씨앗이 보기도 좋은 열매로 나타나는 변화를 기억합시다. 비록 나의 스펙이나 형편이 작고 까많게 보이더라도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여하히 죽으면 조건에 상관없이 탁월하고 주도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사람들이 인정하는 열매가 열릴 것입니다. 죽어야 살고 죽어야 열매맺습니다. 은정이 육성의 공동묘지가 되게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