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15: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영성이 깊은 수도사가 있었다. 많은 수도자들이 그를 따랐다. 점점 유명해지자 그가 속한 종단에서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려고 주교를 파견했다. 주교가 수도한지 얼마나 됐는지 물었다. 수도사가 답했다. ‘이제 하루 됐습니다.’ 주교는 이 사람이 유명해지더니 농담을 다하네.. 라고 생각했다. 감잡은 수도사가 설명했다. ‘저는 날마다 죽어서요..’. 끊임없이 고개를 쳐드는 육신을 날마다 죽였다는 것이다.
자아를 죽이는 영성은 부활의 소망이 없다면 헛수고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이생과 다른 영생이 있고 짧은 이생을 넘어 영원한 세계로 가는 길이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님을 통해 열려 있기에 그 길을 여신 주 예수만을 자랑하며 날마다 새사람으로 살려고 나의 아집, 나의 욕망, 나의 죄성을 죽이는 것이다. 어떻게 죽이는가? 순종으로 죽인다. 기도로 죽인다.
말씀에 대한 순종은 말씀 아닌 것에 대한 불순종이다. 일상에서의 순종은 십자가에서 주님과 함께 이미 죽은 옛사람에 대한 확인사살 비슷하다. 기도 역시 동일한 기능이 있다. 기도는 내가 할 수 없으므로 주님께서 도우시고 이루어주세요 라는 의탁이다. 기도를 안하는 것은 내가 하겠다는 말과 같이 된다. 이런 육성을 죽이고 무릎을 꿇을 때 비로소 주님께서 움직이신다.
*은정 가족들에게
능력신앙은 내가 죽어 주님께서 나타나시느냐, 내가 살아 주님께서 잠잠하시느냐의 여부에 좌우됩니다. 내가 죽는 것은 안방을 내어드리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살면 주님을 문간방으로 밀어내는 것입니다. 바울처럼 나는 죽고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영성적 삶으로 가야합니다. 순종과 기도는 나를 죽이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