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15:16-19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신앙은 영의 세계를 중심으로 하지만 현실과 철저하게 연결되어 있다. 죽음은 현실이다. 부활은 그런 현실에 현실적인 변화가 초자연적으로 일어날 것임을 예고한다. 예수님은 그 첫 열매셨다. 죽으셨는데 다시 사셨고, 그 부활의 몸으로 다락방을 출입하시고 생선도 드셨다. 죽음을 이기신 것이데 유령처럼 몽환적 형상으로 다니신 것이 아니라 분명 몸을 입고 활동하셨다. 물론 ‘신령한 몸’이었다. 그것은 장차 너희도 이렇게 되리라는 분명한 암시이기도 했다. 현실로 일어난 죽음인데 부활의 몸이 되어 죽음을 극복하셨음을 또한 현실적으로 보여주셨다.
이로 인해 사망권세는 무력화되었다. 사망은 처음부터 인간에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아담의 타락으로 불쑥 들어 온 불청객이었다. 그래서 사망은 처음부터 인간에겐 어색한 것이었다. 그래서 잠잔다든지, 돌아가셨다든지 하는 우회적인 표현을 쓰는 것이다. 사망에 대해선 슬퍼한다. 은연 중 안이랬어야 하는데 이런 일을 어떻게 겪게되었다는 분위기가 강하다. 처음부터 운명지어진 것이라면 마치 배고플 때 식사를 하듯, 피곤할 때 잠을 자듯 당연하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꺼리고 부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은 처음부터 인간과 하나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죄로 말미암은 심판의 결과였다.
십자가와 부활은 죄와 죄로 말미암았던 모든 부조리를 처리한 은혜의 쾌거였다. 십자가는 부활로 완성되었다. 부활이 있었기에 십자가가 은혜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만일 부활이 없어서 예수께서 죽음으로 끝났더라면 우리에겐 구원도 소망도 없다. 그저 세상 사람들처럼 죽음으로 모든게 끝이니 이생에서 먹고 마시고 놀자 할 것이다.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인이 가장 불쌍한 존재가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은 사망과 저주의 권세를 끝장낸 승리의 클라이막스였다. 그 덕분에 나도 장차 부활의 신령한 몸을 입고 주님과 더불어 왕노릇하게 되는 복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은정 가족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구원도 영생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 분의 부활로 우리도 그 분과 같은 형상, 같은 영광을 덧입게 되는 은혜를 얻었습니다. 사망과 저주를 박살낸 부활의 권능이 성령을 통해 우리에게 연결이 되었으므로 배짱있게 살아갑시다. 그 부활의 권능이 우리의 삶에 흐르도록 부활의 주님 중심으로 살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