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큐티 02.05ㅣ고전 14:26-40


 

고전 14:27-29 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많아야 세 사람이 차례를 따라 하고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으면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별할 것이요

은사의 활용 방안에 대한 가르침이다. 방언은 두 종류가 있다. 다같이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이지만 어떤 방언은 통역이 필요한 방언이 있고 통역이 필요하지 않은 방언이 있다. 통역은 알아들을 수 없는 발성이기에 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통역이 필요하지 않은 방언이 많다. 그러면 왜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을 하게 하시는걸까. 그것은 우리가 무엇을 구해야 할지 헤맬 때가 많기 때문이다. 기도야 어떻게든 할 수 있지만 정말 필요한 기도를 못할 때가 있다. 우리의 이기심이나 유치한 욕망 등이 앞설 때이다. 키우는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는 부모가 흔치 않다. 부모 입장에서 볼 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어야 할 때가 많지않은가. 그럴 때 성령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정말 필요한 것을 구하시거나, 또는 우리가 알아서 하지 못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기도를 대신 하시는 것이 방언이다.

그러면 통역이 있는 방언은? 이런 경우 그런 방언은 예언의 기능을 한다. 예언의 기능을 하는 방언은 당사자 내지는 모두가 알아야 하기에 통역을 해서 그 뜻을 전하는 것이다. 그러면 간단하게 예언을 직접 듣는 것이 낫지않을까. 예언기능을 하는 방언이 통역자를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예언보다 과정이 복잡하지만 그 과정 자체가 통역내용의 신실함을 보증한다. 사실 예언은 오염의 위험이 있다. 예언하는 자의 편견이나 영적상태에 따라 예언의 순도가 좋아지기도 하고 나빠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구약시대 어용선지자들의 예언은 대부분 권력의 눈치를 보느라 대부분 오염되었다. 즉 틀린 예언이 많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방언과 통역을 거친 예언의 말씀이 신실성을 담보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초대교회에는 공예배 때에 이런 현상이 많이 나타났다. 통역이 필요한 방언은 통성기도 시간이 아니라 조용히 예배가 진행되는 도중에 불쑥 터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럴 때는 차례를 따라 해야 했고 만일 통역이 없으면 개인기도 차원의 방언을 말해야 했다.

방언이나 통역이나 예언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하시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알려주시는 메시지이다. 그것은 성경말씀의 바탕안에서 성경말씀의 개별적 적용에 관한 은총을 주시는 축복이다. 그래서 구체적인 상황에서 성경말씀의 원리를 어떻게 이루어 나가는가를 이끌어주시는 것이다. 택한 자녀의 풍성함과 평안을 위해 교사처럼, 인도자처럼 이끄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이렇듯 초자연적 은사들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이다.

*은정 가족들에게

본문 39절에서 바울은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말하기를 금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40절 ‘모든 것을 품위있게 하고 질서있게 하면..’ 이런 은사들은 평범 이상을 넘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권세와 축복을 누리게 하면서 탁월한 삶을 살게 합니다. 사랑을 바탕으로 사모하세요^^

#정재우Joshu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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