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큐티 01.27ㅣ고전 11:26


 

고전 11:26.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성경에서 떡은 우리나라와 같은 간식개념이 아니다. 번역을 떡이라 했을 뿐 우리 식으로는 밥과 같다. 포도주 역시 우리보다는 일상적인 의미가 더 강한 음료로서의 이미지가 강했다. 주님은 다락방에서 가진 최후의 만찬에서 일상에서 접하는 음식과 음료를 성만찬으로 구별하셨다. 그 때 이후로 제자들은 떡과 포도주를 대할 때마다 주님의 찢긴 몸과 흘리신 피를 연상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양식의 힘을 입어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까지 십자가의 은혜를 전하는데에 진력했다.

음식과 음료는 몸에 들어가면 몸과 하나가 된다. 몸을 움직이는 에너지가 된다. 음식과 음료가 없다면 기동을 하지 못할 것이며 생존조차도 어렵다. 성찬은 나에게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와 하나가 되어 있는가를 묻는다. 성찬은 나의 삶의 동력이 십자가의 은혜에 있는가를 묻는다. 성찬은 내가 십자가의 은혜를 전하는데 힘쓰고 있는가를 묻는다. 주님은 성찬을 나누시며 나를 기념하라 하셨다. 기억하고 새기고 나누라는 말씀이었다. 성찬은 단지 내가 은혜받고 위로를 얻는데서 그치라 하지않는다.

주의 죽으심을 전하라 하셨다. 어떤 모양으로든 주의 죽으심을 전해야 하는 것이다. 예배를 드리는 일과 전하는 일은 늘 같이 가야 한다.

*은정 가족들에게

우리는 성찬을 통해 은혜와 위로와 치유와 축복을 받습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받는데서 그치지말고 전하라 하십니다. 전하는데에도 힘쓰는 은혜가 바람처럼 은정 가족들의 심령에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정재우Joshua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시 22:14-15 나는 물 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밀랍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입천장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죽음의 진토 속에 두셨나이다 시 22편 서두(1절)는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의 탄원과 같다. 주님은 극심한 고통 가운데서 22편을 기억하셨던 거다. 본문 역시 십자가에

에 10:3 유다인 모르드개가 아하수에로 왕의 다음이 되고 유다인 중에 크게 존경받고 그의 허다한 형제에게 사랑을 받고 그의 백성의 이익을 도모하며 그의 모든 종족을 안위하였더라 에스더는 연대기적으로 스룹바벨이 주도한 1차 포로 귀환(B.C. 537년)과 에스라가 주도한 2차 포로 귀환(B.C. 458년 경) 사이에 존재했다. 그렇다면 하만의 음모를 극복한

에 9:15-16 아달월 십사일에도 수산에 있는 유다인이 모여 또 삼백 명을 수산에서 도륙하되 그들의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아니하였고 왕의 각 지방에 있는 다른 유다인들이 모여 스스로 생명을 보호하여 대적들에게서 벗어나며 자기들을 미워하는 자 칠만 오천 명을 도륙하되 그들의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아니하였더라 하만이 부추긴 조서는 결과적으로 페르시아 내의 반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