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71:7-8 나는 무리에게 이상한 징조 같이 되었사오나 주는 나의 견고한 피난처시오니 주를 찬송함과 주께 영광 돌림이 종일토록 내 입에 가득하리이다
무리에게 이상한 징조같이 되는 경우가 구설에 오를 때다. 모함이나 비방 등을 말한다. 누군가가 적대감을 가지고 이를 시작하면 무리가 따르게 된다. 그리고는 이상한 사람으로, 이상한 일을 하는 사람으로 규정된다. 당사자가 사실을 제대로 밝히는 시점에 이르면 이미 상처투성이가 된 상태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 무리들은 이렇게 마감한다. ‘아니면 말고...’ 누군가가 본문을 쓴 시인에 대해 그런 공격을 한 거 같다. 시간이 흐르며 시인은 무리들에게 이상한 징조같이 되었다. 그나마 사실을 제대로 밝힐 수 있다면 다행이거니와 그렇지 못한 경우도 수두룩하다. 요즘 빈발하는 학교폭력의 희생자들, 특히 왕따를 당하다가 비극적 선택을 하거나 심리적 음지에서 오랜 세월을 웅크리며 살게되는 사례들 역시 비슷한 경우이다.
시인은 그런 상황에서 무엇을 했는지 알려준다. 아니 성경은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시인을 통해 알려준다. 주께 피하는 것이다. 마음에 있는 것들을 토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단지 주님을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 혹은 기도를 해도 뭉뚱그려서 단번에 넘어가는 기도도 아니다. ‘다 아시지요~’ 하는 단축성 기도이다. 그렇게 해서 평안이 오면 그렇게 해도 무방하나 그렇지 않다면 기도로 맡겼다는 착각만 줄 뿐이다. 주님께 마음을 그늘지게 하는 모든 것을 상세하고 구체적으로 털어놓는 것이다. 마치 누군가 분명한 실력이 있어서 하소연만 잘하면 다 해결해줄 수 있는 실력자를 만나서 시시콜콜 입장을 설명하는 것 같은 자세, 그런 자세가 기도에 필요하다. 신앙인의 마음에 평안이 쉬 찾아오지 않는 것은 거의 대부분 이런 자세가 부족해서이다. 어둡게 하는 것은 빛 가운데 드러내야 한다.
시인은 찬양과 경배를 종일토록 입에 올리겠다고 다짐한다. 무언가 입으로 발성하려면 생각 속에 먼저 길을 트게된다. 찬양과 경배를 입에 올리려면 먼저 하나님을 생각해야 하고, 어떤 면을 찬양하거나 경배할지 정리해야 한다. 자연히 생각은 구설의 부담에서 떨어지게 되고 주님께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종일토록 하겠다는 것은 종일토록 생각이 주님께 머물게 하겠다는 뜻이다. 이것이 구설로부터 마음을 지키는 비결이며 하나님을 움직이게 하는 방법이다.
*은정 가족들에게
사람들은 종종 누군가를 이상한 징조처럼 몰아세우는 일들을 합니다. 그런 경우 치밀어오르는 분심을 절제하기가 쉽지않겠지만 그럴 경우 마귀의 노림수에 끌려들어가게 됨을 경계해야 합니다. 시인처럼 주님께 맡긴 다음 마음을 주님으로 채우려 해야 합니다. 주님이 끝내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