욘 1:12 그가 대답하되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 때문인 줄을 내가 아노라 하니라
요나의 아집은 바위같았다. 나를 바다에 던지라.. 차라리 죽겠다는 것이다. 원수가 온전한 꼴을 못보겠다는 것이니 동족을 향한 애정이 눈물겹다. 폭풍이 닥친 이유도 알았다. 내가 불순종한 까닭이다. 하나님 입장에선 확신범인셈이다. 물론 그는 후에 바뀐다. 비유컨대 얻어맞은 뒤였지만 말이다.
맞고 할래 안맞고 할래.. 기왕 할거면 안맞고 하는게 좋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자주 맞고난 뒤에 따른다. 아집이 남아서 그렇다. 아집은 스스로 꿇게 하지않으면 매를 번다. 그런데 이게 쎄면 매를 버는 줄 알면서도 버티거나 자의로 행한다. 요나는 니느웨에 대한 이야기이기보다 나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렇다고 요나를 단순한 옹고집으로만 봐서는 안된다. 아집의 내용이 다른 것이다. 요나로 버티게 한 것은 육신의 정욕 같은 죄가 아니었다. 그가 놓지않은 것은 동족을 괴롭히는 대적에 관한 것이었고 더 나아가 앗수르의 만행을 그대로 두시는 것 같은 하나님에 대한 불만이었다. 왜 이런 나라들이 득세하게 하시는겁니까.. 했던 것이다. 하나님은 그에게 당신의 마음을 가르치신다.
*은정 가족들에게
요나는 민족주의적 애착과 휴머니즘을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그의 이해는 얕았고 짧았습니다. 따지고보면 신앙여정은 내 생각을 내려놓는 여정입니다. 그것을 성화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