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28:5-6 그 날에 만군의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남은 자에게 영화로운 면류관이 되시며 아름다운 화관이 되실 것이라 재판석에 앉은 자에게는 판결하는 영이 되시며 성문에서 싸움을 물리치는 자에게는 힘이 되시리로다
1.남은 자가 되자
'남은 자'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은 남은 자에게 관심을 가지신다. 남은 자란 하나님을 알되 깊이 아는 사람이다. 앞부분에서 책망을 받은 에브라임 일반과는 다른 앎이다. 모르는 건 아닌데 어중간했다. 결국 세속의 물결을 이기지못하고 술취하거나 교만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마음은 안타깝다. 돌보시고 배려했음에도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졌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알되 깊이 알아야 한다. 하나님을 깊이 안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우선 내가 다가가야 한다. 구원은 은혜로 오지만 교제는 나도 힘써야 하기 때문이다.
2.남은 자가 되는 길
다가가되 온 마음으로 다가가야 한다. 렘 29:13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이렇게 다가갈 때 하나님도 봐주셔야 한다. 은혜를 베풀어주시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깊이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온 마음, 즉 전심으로 다가가는 사람의 갈망과 하나님의 긍휼이 만나면서 '남은 자'에게 주어지는 영성의 길이 열리는 것이다. 남은 자의 영성은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별종의 영성이다. 마치 다른 별에서 온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럴 수 밖에 없는게 하나님 나라에 터잡은 영성이기 때문이다. 그것의 완성된 모습은 죽음 건너편에서, 천국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3.면류관과 가시관
남은 자의 삶은 하나님께서 책임지신다. 죽든 살든 하나님만을 신뢰하기로 작정한 사람이기에, 세상과는 다른 결을 살아가는 사람이기에 하나님께서 책임지신다. 선택과 분별의 기로에서는 판결하는 영으로 지혜를 주신다. 세상과 맞부딪히는 국면에서는 싸움을 물리치는 능력을 주신다. 그래서 하나님의 함께 하심과 도우심 덕분에 심판 날에 영화로운 면류관을 쓰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이전에는 사명적 차원에서 예수님처럼 가시관을 쓸 수도 있다. 그 면류관의 사이즈는 이 땅에서 썼던 소명의 가시관 사이즈에 비례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