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20:2 그 때에 여호와께서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갈지어다 네 허리에서 베를 끄르고 네 발에서 신을 벗을지니라 하시매 그가 그대로 하여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다니니라 어느 날 갑자기 옷을 벗고 맨발로 다니라 하신다. 이사야는 제사장 가문에 속한 사람이었다. 체면도 있었고 민족을 향해 질타하는 의분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런데 3일이나 3달도 아니고 3년을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다녀야 했다. 이른바 행동예언이다. 그럼에도 이사야는 그 소명의 무게를 감당해낸다. 순종 이외에 달리 길이 있겠는가? 이사야는 자신의 불편하고 부끄러운 모습을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게 하는 특별한 사역을 감당한다. 의표를 깨는 명령을 주실 때가 있다. 상식적으로 감당키 어려운 사명을 주실 때가 있다. 대부분 그냥 넘기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하나님의 지시를 내가 걸러내는 것이다. 일상적으로 하나님께서는 마음의 소원을 통해 당신의 뜻을 비추어주시지만, 때로는 상식의 영역을 넘는 계획을 강권하시는 경우가 있다. 대부분 자기를 내려놓거나 기득권을 포기하게 하시는 경우가 많고, 그래서 선교지로 간다거나 소외지를 비롯한 특별한 영역을 돌보게 하시는 일도 많은 것이다. 선지자 계열이면 하나님의 뜻을 밝히는 쪽으로, 목회자 계열이면 목양의 영역을 넓히는 쪽으로 인도하실 때가 많다. 대부분 당사자에게 주어져왔던 분야와 연관이 많은 쪽으로 인도를 하시지만 그 다양함은 함부로 예단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들을 수 있느냐이고 순종할 수 있느냐이다. 이사야는 들었고 순종했다. 아브라함도 들었고 순종했다. 모세도 들었고 순종했다. 그러나 이사야는 그들처럼 폼나는 임무가 아니었다. 폼나는 임무가 아니라도 주어지면 수행해야 하는 것이 우리다. 상식으로 계시를 걸러내거나 제약하는 일이 얼마나 많았던가? 편의주의로 하나님의 지시를 흘려보내거나 살짝살짝 외면하는 일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내가 이사야였다면 3일도, 석달도 아닌 3년을 그 부끄러움을 드러내며 살았을까? 아직도 내려놓지 않은 상식과 편의와 완고함은 얼마나 되는걸까? 깨닫고보니 사명이 꼭 폼나야 된다는 법은 없는 것이다. 내가 감당하는 사명으로 하나님께서 폼나면 그것으로 족해야 하는 것이다. 내려갔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저 밑에서 부른다. 더 내려와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