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17:10 하나님을 잊은 이유


2017.09.09

사 17:10 이는 네가 네 구원의 하나님을 잊어버리며 네 능력의 반석을 마음에 두지 아니한 까닭이라 그러므로 네가 기뻐하는 나무를 심으며 이방의 나무 가지도 이종하는도다 1. 하나님을 잊은 이유 이스라엘의 가장 큰 문제들이 등장한다. 징계를 받은 이유들이기도 하다. 먼저 그네들은 그들의 구원의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마음에 두지 않았다. 경건은 모양만 있었고, 마음은 다른 데에 가 있었다. 세상이 너무 좋았던 것이다. 세상의 멋과 세상이 주는 기쁨과 세상이 주는 편의와 안락함, 육성과 육신을 자극하는 말초적 감성들.. 넓은 문과 넓은 길로 다니는 것이 좋았던 것이다. 점차적으로 그들은 구원의 내용을 변질시켰다.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집에 살며 좋은 의자에 앉아 호강을 누리는 것이 구원의 열매라고 생각하게 됐고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받아들였고 빠져 들었다. 그것이 바로 우상의 길이었다. 2. 허망한 모래성 보이는 것들은 보이지 않는 것에서 근원한다. 보이지 않는 영역의 가장 핵심에는 하나님께서 계시다. 보이는 것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원리를 따라 움직인다. 하나님의 원리를 바탕한 것이면 영영히 가지만 하나님의 원리를 떠난 것이면 꽃이 피더라도 얼마가지 않아 지게 될 것이고 나뭇잎조차도 낙엽처럼 떨어질 날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에브라임(=이스라엘)과 다메섹(=아람)은 능력의 반석을 저버리고 허망한 모래성을 쌓았다. 진정한 복의 핵심이 무엇인가를 잘못 짚은 데에 문제가 있었다. 그네들의 관심은 하나님의 영광보다 정치와 경제, 안보에 있었고 그들이 기댔던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라 두뇌회전이었다. 3. 이상한 나무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나무를 심어야 하는데 자기네가 기뻐하는 나무를 심었다. 사 61:3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원래 그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의의 나무가 되기를 원하셨지만 그들은 자기들의 기쁨에 촛점을 맞추며 살았다. 더 나아가 그들은 이방의 나무가지도 이종했다. 이는 우상을 의미한다. 우상은 나무나 돌에 불과하지만 사탄은 사람의 내면에 있는 탐욕을 부추기며 우상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성공했다. 우상 자체는 별거 아니지만 우상을 매개로 어둠의 세계와 연결시켰다. 이 모든 실수들의 결말은 '근심과 심한 슬픔의 날에 농작물이 없어지리라' 였다. 나는 누구의 기쁨을 위해 사는가? 내가 심고 키우는 나무는 누구의 기쁨을 위한 것인가? 하나님의 기쁨을 구하면 둘 다 기쁘다. 나의 기쁨만을 구하면 결과는 근심과 슬픔이다. 모두 기쁜 쪽을 택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해야 한다.

#정재우Joshu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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