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사 11:1-2(2017년 9월 1일)


 

사 11:1-2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이새의 줄기에서 난 싹은 예수님을 가리킨다. 그리고 성령께서 그와 함께 하신다. 결국 만성적으로 부패하고 타락한 세상은 메시야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메시야란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의미한다. 기름부음이란 성령께서 강림하시는 은혜이다. 예수님에겐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강림하셨다. 이사야는 죄로 찌들어있는 유다백성에게 구속사의 핵심을 언급한다. 아마도 당시 사람들은 7장의 동정녀탄생, 53장의 고난받는 종의 예고와 함께 무슨 말인가 했을 것이다. 어두운 시절, 심판과 책망으로 끝나지 않고 메시야의 소개가 언급된 것은 은혜다. 사람을 건지기 위해서 끝까지 해보시겠다는 하나님의 열심의 증거이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의 구원을 위해 만군의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께서 출동하시는 것이다. 공의의 관점에서 소돔과 고모라 쓸어버리듯 하셔도 누가 뭐라 할 수 없는 타락한 인간을 위해 아버지는 아들을 보내시고 그 사랑을 깨닫게 하기위해 여호와의 영이 임하신다. 삼위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이 부어지는 존재가 인간인데 그 중에 내가 있는 것이다. 내게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성령의 교통하심이 함께 한다. 나는 은혜받은 존재이며 사랑받는 존재이다. 내 인생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나의 내면에 어떤 움직임이 있든, 그 모든 것을 이미 헤아리시고도 만세전부터 택하신 하나님의 긍휼이 내 인생에는 넘친다.

여호와의 영이 강림한 이새의 한 싹은 못나고 부패한 사람을 위해서 났다.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영광의 회복에 초점이 있지만 그 영광의 회복은 사람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사람을 건지고 씻고 새롭게 하고 세우는 지난한 과정이 필요한 일인데 그 일을 기꺼이 하시겠다고 작정하신 때문이다. 그래서 나같은 죄인이 말씀과 성령의 역사로 이 천 년 전 갈보리 십자가에 몸찢고 피흘리신 분이 구원자이심을 깨달아 그 분을 영접하고 구원을 얻은 것 아닌가. 성령님은 깨달아 알게 하는 분이시다. 그 분에게는 지혜와 총명과 모략과 재능과 지식이 충만하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은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신다. 성령충만의 핵심은 은사나 능력, 열정이나 사역보다 하나님을 경외함에 있다.

메시야에게 임하셨던 성령께서 내게도 임하셨다. 예수님처럼 하나님 아버지를 경외하며 예수님처럼 살며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수행하게 하려 하심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사는 은혜에 감사하며 예수님처럼 겸손하고 온유한 마음을 가지고 아버지의 뜻을 수행하리라 마음먹는다. 성령님, 오늘도 도우소서..

Recent Posts

See All

열왕기상 20:42-43ㅣ5월 25일

왕상 20:42-43 그가 왕께 아뢰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멸하기로 작정한 사람을 네 손으로 놓았은즉 네 목숨은 그의 목숨을 대신하고 네 백성은 그의 백성을 대신하리라 하셨나이다 이스라엘 왕이 근심하고 답답하여 그의 왕궁으로 돌아가려고 사마리아에 이르니라 하나님은 아합에게 벤하닷을 처형하라 명하셨다. 그럼에도 아합은 그를 살려둔다. 살려주어 군신의 예를

열왕기상 20:28ㅣ5월 24일

왕상 20:28 그 때에 하나님의 사람이 이스라엘 왕에게 나아와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에 아람 사람이 말하기를 여호와는 산의 신이요 골짜기의 신은 아니라 하는도다 그러므로 내가 이 큰 군대를 다 네 손에 넘기리니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아람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산신으로 간주했다. 아마도 시내산 시절을 추정했던 듯 하다

열왕기상 20:13ㅣ5월 23일

왕상 20:13 한 선지자가 이스라엘의 아합 왕에게 나아가서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이 큰 무리를 보느냐 내가 오늘 그들을 네 손에 넘기리니 너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하셨나이다 아람의 도발로 심란한 아합에게 선지자가 나타나 승리를 예고한다. 그 승리는 하나님으로 인한 승리다. 이 대목에서 아합을 도우시는 하나님의 배려가 어색하게 느껴진다. 호통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