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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16일


 

사 3:8 예루살렘이 멸망하였고 유다가 엎드러졌음은 그들의 언어와 행위가 여호와를 거역하여 그의 영광의 눈을 범하였음이라

맡긴 자들에게 묻는 책임은 간단치 않다. 예루살렘에는 성전을 허락하셨고 유다에겐 하나님의 계시가 맡겨졌다. 어느 종족에도 없었던 커다란 특혜였다. 그러나 그들은 거역의 길을 갔다. 조금 더 많았으면.. 조금 더 강했으면.. 하는 바램이 하지 말라는 우상숭배를 범하는 쪽으로 이끌어갔다. 영광의 눈을 범했다는 것은 목전에서 악을 행했다는 뜻이다. 성전의 제사와 율법이 방파제가 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욕망은 제사와 신앙을 변질시켰다. 욕망은 죽기 전에는 없어지지 않는다. 경건이 강하면 위축되지만 경건이 약하면 기세를 부린다. 마치 체내의 세균과 같다. 면역역이 강하면 잠잠하지만 면역력이 약해지면 여기저기 흔들고 다닌다.

영적면역력이 약해지면 세상이 커보인다. 세상 것이 좋아 보인다. 보이는 것으로 인해 비교의식을 느꼈다면 영적 면역력이 약해졌다는 방증이다. 돈이, 지위가, 넉넉한 생활여건이 좋아보여 점점 ‘하나님의 길’을 떠나 세상적 노력에 쏠려 간다면 하나님의 생명싸개, 즉 보호막이 엷어진다. 마귀의 역사를 감당하기 힘들어지는 것이다.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유다가 넘어진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영적 면역력을 키울 필요가 있다. 욕망이라는 질환이 기세를 부리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

언어와 행위로 거역했다고 했다. 적극적으로 대적하는 말만이 거역의 언어가 아니다. 의심하는 언어, 신뢰가 담기지 않는 언어도 거역의 언어다, 뱀이 하와를 유혹할 때 하나님께 대들라고 하지 않았다. “아니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거 참 이상하네..” 이런 분위기였다. 절묘한 이간책이다. 아담과 하와가 힘을 합쳐 하나님께 반란을 일으킨 것이 아니다. 단지 먹지 말라한 실과 하나를 나눠먹었을 뿐이다. 그것이 반역이 된 것이다. 대드는 언어, 대드는 행실을 하지 않는다고 모든게 괜찮은게 아니다. 신뢰하지 않는 언어, 신뢰하지 않는 행실도 거역의 범주에 속한다. 우리는 가급적 적극적인 거역의 언행을 삼간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간접적 거역의 언행을 간과할 때가 많다.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만 어디...', 또는 '기도한다고 뭐 별 수 있겠어' 등의 언어는 은근한 거역을 담고 있는 언어들이다.

유다 사람들이 성전의 제사를 그친 일이 없고 율법을 멀리 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마음에는 욕망이 있었고, 그들의 언행에는 거역이 있었다. 나의 마음은 괜찮은가? 나의 입술을 주의하고 있는가? 부지런히 살펴야 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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