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 5일


 

민 11:33-34 고기가 아직 이 사이에 있어 씹히기 전에 여호와께서 백성에게 대하여 진노하사 심히 큰 재앙으로 치셨으므로 그 곳 이름을 기브롯 핫다아와라 불렀으니 욕심을 낸 백성을 거기 장사함이었더라울면서 고기를 달라한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질리도록 먹게 하셨다. 그러나 먹게 하신 것에서 그치지 않으셨다. 욕심을 낸 백성들을 재앙으로 치셨다. 원하는 것을 주셨지만 야단도 치셨다. 망나니 자식이라도 자식은 자식이기에 필요를 공급하지만 불효한 부분에 대해서는 책임을 물으시는 것과 같다. 그래서 시편 말씀처럼 백성들은 원하는 것은 얻었지만 그 영혼은 쇠약하게 되었다. 원하는 것을 얻어도 기쁨이 없는 경우가 있다. 떼를 써서 얻긴 했지만 주는 이의 마음에 기쁨이 없다면 분위기가 좋을 수 없다. 만일 이스라엘이 출애굽의 은혜와 만나의 공급을 감사하면서, 가나안을 예비하심을 찬양하면서 고기를 구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하나님께서도 기분좋게 주셨을 것이라 확신한다.재앙을 만난 백성은 '욕심을 낸 백성'이었다. 욕심은 분에 넘치는 생각이다. 받은 바 은혜가 무엇인지 모르고 원망하면 분에 넘치는 생각을 한 것이다. 현재 누리고 있는 것이 어디로부터 왔는지 깨닫지 못해 불평한다면 분에 넘치는 생각을 한 것이다. 조금만 참으면 가나안에 가서 젖과 꿀을 먹게 될 것이다. 하나님 아니었으면 계속 고된 종살이를 했을 사람들이다.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존재했는지조차 알려지지 않은채 사라졌을 사람들이다. 유월절 어린 양을 애매히 죽여 그 피의 대가로 해방과 자유를 주었건만 감사할 줄도, 찬양할 줄도 모른다면 대단한 착각에 빠져 있는 것이고 분에 넘치는 마음, 즉 욕심을 지닌 것이다.사람의 마음이 이처럼 얍쌉하다. 잠깐의 광야를 견디지 못해 대드는 것이다. 과거의 영광도 소용없고 미래의 젖과 꿀도 소용없어지는 것이다. '지금' 걷는 그 길이 험하면 굼시렁하는 것이 나이고 우리이다. 감사와 찬양이 없다면 욕심을 내고 있는 것이다. '지금' 감사하고 찬양드려야 한다. 항상 '지금'은 중요하다..

#정재우Joshu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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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10:3 유다인 모르드개가 아하수에로 왕의 다음이 되고 유다인 중에 크게 존경받고 그의 허다한 형제에게 사랑을 받고 그의 백성의 이익을 도모하며 그의 모든 종족을 안위하였더라 에스더는 연대기적으로 스룹바벨이 주도한 1차 포로 귀환(B.C. 537년)과 에스라가 주도한 2차 포로 귀환(B.C. 458년 경) 사이에 존재했다. 그렇다면 하만의 음모를 극복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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