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르시되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하나님의 관점은 우리의 관점과 엄청~ 차이가 있습니다. 성경의 기록만 봐도 거의 대부분 상식이나 통념과 다른 경우가 많지요. 그것은 나의 관점, 나의 판단 기준과도 엄청~ 다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본문의 경우 사람들은 헌금액수를 보지만 하나님은 비율로 보시며, 물질 자체보다도 마음을 보십니다. 주님의 말씀이 아니었다면 과부는 소액헌금자로 간주되어 사람들의 눈에 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물론 사람 중에도 어느 정도의 깨어있는 감각으로 유사한 관점을 지닐 수 있지만 주님의 눈은 우리의 눈과 거의 대부분 많은 격차를 지닙니다.
물질관에 대해 굳어져 있는 우리의 두뇌유전자형질을 개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세상의 상식과 통념에 물들어 있는 두뇌의 유전자형질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세상은 많은 돈과 부자와 지위높은 자들, 그리고 그런 환경들을 최고로 치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고 헌신을 보시며 사랑을 보십니다. 아담의 타락으로 창조질서가 깨지면서 가치관의 혼돈이 닥쳐왔습니다. 제일 좋은 것은 별 볼일 없는 것처럼 되어버렸고, 별 볼일 없는 것들이 대단한 것들로 뒤바뀌어 버렸습니다. 그나마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이 제대로 알려지게 된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이후입니다. 그 때부터 이 세상엔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과 사탄의 타락한 가치관이 혼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태어나면서부터, 아니 태교적 부터 사탄의 가치관에 젖어 출생했다가 그렇게 배우고 그렇게 성장하면서(예수님 만나기전까지) 두뇌유전자 형질도 그렇게 형성이 되었습니다. 예수믿고 교회를 다니면서 새로운 가치관, 새로운 기준을 접하지만 사람마다 내면의 구조가 달라서 어떤 이는 빨리 영적인 감각이 깨어나서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에 동화되는가 하면, 어떤 이는 교회를 다니면서도 신앙생활의 동기마저도 물질과 출세에 초점을 두는 기복적 경향을 보이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중심이 가장 중요합니다. 과부의 소액헌금이 부자들의 거액헌금보다 더 칭찬을 받은 것은 마음 중심에서 큰 비율의 헌신을 했기 때문입니다. 십일조는 십분의 일로 비율이 정해져 있지만 그것은 최소한의 기준이지 맥시멈이 아닙니다. 여건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그 이상도 받으시지요(강요나 암시가 아님을 밝힙니다^^) 시간과 재능도 마찬가지입니다. 쓰다 남은 시간, 짜투리처럼 드리는 재능이 아니라 주님 보시기에 '성의'가 느껴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의 라고 한 것은 생계와 생존 때문에 바쁠 수 있음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도 과부가 두 렙돈 드리듯 성의있게 시간도, 재능도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마음리셋하는 과정에서 두뇌형질을 바꾸는 과정도 중요하다 했는데 따지고보면 저 역시 선입견과 고정관념의 길이 굳어져 있음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도 열심히 마음리셋을 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