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에서 터진 생수, 성령


찬송 : 408장 나 어느 곳에 있든지 /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민수기 20:10-11

중동 지역의 거주민들이 ‘광야’ 를 횡단할 때, 가장 두려워하는 것 2가지는 ‘전갈’과 ‘갈증’이라고 합니다. 전갈은 그 크기가 작아도 한번 물리면 지독한 독으로 인해서 죽기 십상이고 살아도 최소 2주 동안은 해산의 고통보다 12배는 더 아픈 지독한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 이 전갈보다 더 극심한 고통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갈증’입니다. 그래서 이동하는 거리만큼의 필요한 물이 충분히 준비되기 전까지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중동지역은 연간 강우량이 80밀리에 불과한 소위 ‘작렬 지대’로서 조금만 방심해도 일사병으로 치명상을 입는 저주의 땅입니다. 그곳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물입니다. 광야의 삶에 전갈과 독충이 득실거리는 것처럼, 이 세상살이에도 마귀의 역사와 공격이, 미혹과 유혹이 얼마나 심한지 모릅니다. 광야에서의 갈증이 그 무엇보다 고통스러운 것처럼, 이 세상살이에서도 허무와 갈증이 얼마나 괴로운지 모릅니다. 사람들은 그 갈증을 해갈하려고 발버둥치고 있습니다. 돈이나 명예, 권력 등 여러 방법으로 인생의 갈증을 해갈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사막의 오아시스가 아니라 신기루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렇다면 광야 같은 이 세상에서 갈증 없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성령의 생수를 마셔야 합니다.

첫째, 인간의 목마름은 성령의 생수로서만 온전히 해소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7장 39절에서 ‘나를 믿는 자는 성경의 이름과 같이 배에서 흘러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생수의 강’이 바로 성령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는 갈한 목을 축여 주고 생명을 소생케 하는 광야의 생수와 같은 역할을 성령께서 행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생수이신 성령은 인간의 갈증을 온전히 해소하시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고 하나님의 생기가 들어와 생령이 된 인간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영으로 호홉하도록 지어졌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하나님과 단절된 인간은 영적으로 죽었고, 세상과 마귀가 내뿜는 지옥의 열기에 신음하며 광야와 같은 인생길을 걸어가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인간은 영적 목마름을 해소하고 생명을 소생시킬 생수를 필요로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갈한 영혼, 광야 같이 메마른 영혼에 생수이신 성령을 통해서 하늘의 생수가 공급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를 소생시키는 분이십니다. 어떤 것도 성령을 대신해서 영혼의 갈증에 해갈을 줄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둘째, 성령의 생수는 다시는 목마르지 않게 합니다. 2차 대전 중 아프리카 전선에서는 사막 작전을 수행하던 중 길을 잃고 차도 잃은 군인들이 신기루를 보고 끝내 환각 현상을 일으켜 죽는 일이 많았다고 합니다. 군인들이 신기루를 보고 달려간 곳에서 모래를 물처럼 삼키다가 질식사한 것입니다. 광야에 있는 것들은 신기루 같은 것입니다. 광야 같은 세상에 있는 것 중에 진정한 해갈을 가져다 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세상 것이란 바닷물과 같아서 보기에는 시원해 보이지만, 마시면 갈증만 더 심해집니다.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물처럼 보이는 것’도 아니고, 시원스럽게 보이는 짜디짠 바닷물도 아닙니다. 바로 목마름을 실질적으로 해갈해 줄 수 있는 생수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신기루에 속아 헤매는 것이 아니라, 모래를 삼키듯 질식하는 인생이 아니라, 영혼의 해갈을 얻고 참 만족을 얻는 인생을 살도록 하기 위해 성령을 보내신 것입니다. 늘 성령을 의지하며 살아갈 때 풍족한 생수의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광야에서는 오직 생수만이 해답인 것처럼 광야 같은 이 세상에서의 해답은 오직 성령이십니다. 그러므로 광야 같은 이 세상에서 성령의 생수를 한껏 마시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기도 : 이세상을 살아갈 때 신기루와 같은 세상 것으로 채우지 않고 성령의 생수로 목마름을 해갈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정재우Joshua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