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가니 이에 유다가 대제사장들과 성전 경비대장들에게 가서 예수를 넘겨 줄 방도를 의논하매 그들이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언약하는지라
그는 분명 제자로 불리웠습니다. 예수님 측근에서 재정도 맡았습니다. 3년 여 예수님의 설교와 가르침을 들었고 사역을 보았습니다. 그런데도 어떻게... 그 사이에 뒤집어지지를 않았을까? 예수님 곁에 있었으면서! 유다는 굳어진 마음을 가진 사람의 전형입니다. 3년 동안 그 숱한 말씀의 씨앗이 그의 머리위로 봄날에 꽃씨 휘날리듯 떨어졌음에도 그는 여전히 예수님과 다른 길을 갑니다. 마음에 다른 것이 이미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복음이 퉁퉁 튕겨질 수 밖에 없었던 이유입니다. 사탄은 그런 마음을 좋아합니다. 자기를 위한 스테이지로 보고 마음껏 설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배신의 막이 열립니다.
오늘날로 치면 중직자나 목회자 자리에 있던 사람입니다. 마지막 만찬에서 예수님이 배신자가 있음을 언급하실 때까지 어느 누구도 그의 정체를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감쪽 같았습니다. 중직이 다가 아니고 목회자가 다가 아닌 것이지요. 신앙의 세계에선 직분이나 연조가 무의미합니다.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입니다. 말씀 앞에서 자기를 내려놓는 사람은 일단 안정권입니다. 그러나 말씀 앞에서 자기 주관, 자기 철학을 놓지못하면 위험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라고 불리워도 실상은 가짜입니다. 무슨 직분이며 얼마나 교회를 다녔는가가 아니라 말씀 앞에 서서 자기를 내려놓고 말씀을 전심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진짜입니다.
말씀을 받지 않으면 사탄이 들어옵니다. 그럴 때 생기는 돈은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그럴 때 만나는 사람들은 그럴듯한 지위에 있어도 실제로는 유익이 없습니다. 오히려 주님께로부터 더 멀어지게 할 뿐입니다. 말씀에 무릎꿇지 않는 생각, 주님께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돈, 복음을 버리라 하는 인간관계들은 우리 주변에 무수합니다. 유다는 그런 것들에 무릎꿇는 사람들의 전형입니다.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가니..' 그 때 유다가 거품을 물고 쓰러지거나 발작한 것이 아닙니다. 감쪽같이 평안해 보였습니다. 친한 척~ 하며 주님 곁에 있었지만 주님과 가장 먼 거리에 있었습니다.
사탄은 주님 곁에 있는 사람도 파고듭니다. 마지막 만찬 석상에도 파고듭니다. 그렇게 만든 것이 유다의 굳은 마음이었습니다. 자기 생각, 자기 주관, 자기욕망이 복음을 튕겨내고 사탄을 부른 것입니다. 등골이 서늘한 일입니다. 마음 상태라는 것이 이렇게나 치명적일 수 있는 것이지요. 도리없이 나는 내가 주님 곁에 있고자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주님을 따라다니는 이유가 무엇일까? 사탄이 한조각 마음의 땅뙤기라도 발디딜 틈은 없을까? 를 묻습니다. 십자가 전 날, 마지막 만찬 자리마저도 퇴색하게 만들었던 그 비극이 오늘날에 사라졌으리란 보장이 없습니다. 끝까지 깨어있어야 합니다. 오늘도 겸허하게 물두멍 앞에 나와 말씀의 물로 영혼을 씻어내렵니다.
엡 5:26-27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