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는 마음을 둔하게 하는 것이기에 피해야 합니다.마음을 둔하게 한다는 것은 '무거운 것에 마음이 내리 눌려지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럴 때는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습니다. 결국 감당해야 할 사명에서 멀어지게 하고 최선의 길을 놓치게 하며 어두운 쳇바퀴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게 합니다. 방탕과 술취함은 중생하면서 자연히 멀어지게 되어 있지만 그리스도인이 되어서도 잘 버려지지 않는 부분이 생활의 염려 입니다. 생활에는 실제로 염려할 만한 부분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생활의 염려는 자연스런 현상처럼 받아들이고 친숙하게 지냅니다. 그러나 주님은 생활의 염려를 자연스러운 반응으로 보시지 않고 방탕과 술취함과 같은 수준으로 보십니다. 즉 예수님이 주인이 아닌 상태에서 일어나는 일로 보시는 거지요. 방탕과 술취함은 명백하게 육신이 주인이고 욕망이 주인임을 스스로 보여주는 상태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방탕하거나 술취하지 않고 성령충만하기를 원하십니다.
엡 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성령충만은 성령의 지배를 받는 상태, 즉 성령으로 오신 예수님의 지배와 통치를 받는 상태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통치에 대해선 성결과 순종이 기본 자세이지요. 생활의 염려가 이 그룹에 속한 것은 역시 예수님을 주인으로 신뢰하지 않는 상태로 공통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염려가 마음의 문을 노크할 수 있지만 들어오게 해서는 안됩니다. 누군가 노크할 때 누구야! 할 수 있고 왜왔어? 할 수 있지만 문을 열어 들어오게 하는 것은 별개입니다. 우리는 누구야, 왜 왔어 에 이어 영접까지 하지요. 그리고는 염려가 둥지를 틀게 합니다. 주님은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생활의 염려는 사람에겐 숙명처럼 보입니다. 목회자도 이 그늘을 벗어버리는 일이 쉽지않을 때가 많습니다. 여전히 땅에선 먹고 살아야 하고, 자녀를 키워야 하고, 최소한의 사람 노릇을 해야 합니다. 당차게 살아가려고 하면서도 또 한 편에선 염려가 치밀한 계산을 펼치면서 마음을 누르려고 합니다. 염려를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주인이 바뀐다고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밀려나고 물질이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물질이 와주는 것도 아니지요. 물질이 주인처럼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판단의 기준을 물질 여부에 둡니다. 물질이 있으면 하고 없으면 없으니까 안하고.. 물질이 얼마나 되는가에 따라 주님 일도 실행에서 수준에까지 결정됩니다. 교회에서도 무언가를 행하려 할 때 제일 먼저 '예산은?' 하고 물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예산유무를 놓고 회의석상에서 치열한 공방이 일어날 때가 종종 있지요. 주님의 영역이 물질에 의해 지배되는 상황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을 의지하는 것도 물질주시는 분이심을 당연한 전제로 할 때가 많습니다. 말로는 그렇다 안하지만 물질이 없을 때 주님을 대하는 마음과 물질이 생길 때 주님을 대하는 마음이 다르지요. 예수님을 주인으로 분명히 생각합니다만 '물질을 가져다 주시는' 주인이라는 형용사가 앞에 붙습니다. 그 생각으로 교회나오는 분들도 적지는 않습니다.
주님은 물질의 주인이시기에 물질의 공급도 주관하시지요. 그러므로 신앙의 길에선 물질의 있고 없음이 아니라 주님의 뜻이 있는가, 있다면 어떤 것인가가 제일 중요합니다. 주님의 뜻이 분명하면, 그 뜻만 분명하다면 염려할 것이 없지요. 그러면 현재 부족한 부분, 필요한 부분은 어떻게 해야할까요? 주님은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고 하시고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였음이라'고 하십니다. 주님의 온전하신 뜻의 분별이 최우선이고 그 다음은 기도입니다. 염려가 아니고 기도입니다. 염려할 시간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염려가 24시간 노크하면 24시간 기도해야 합니다. 염려가 마음을 파고들으려 할 때마다 기도로 막아내야 합니다. 염려로 둔하여지지 않고 기도로 깨어야겠습니다. 염려하면 눌리고 기도하면 피어납니다. 염려하면 시야가 좁아지지만 기도하면 시야가 넓어지지요. 오늘도 염려를 스모하듯 밀어내고 기도로 채워나가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