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12:39-40 그들이 능히 믿지 못한 것은 이 때문이니 곧 이사야가 다시 일렀으되 그들의 눈을 멀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였음이더라
지금 이 말씀을 듣는 사람들은 대부분 유대인들이다. 우선 모태신앙인들이고 여전히 제사를 드리며 안식일이면 회당에 나가는 사람들이다. 당시에도 여전히 메시야를 기다린 사람들이다. 그런데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마음이 완고했던 까닭이다. 그나마 나았던 제자들조차도 예수님의 실체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 역시 정치적 메시야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완고함 때문이었다. 이들이 변화된 것은 십자가와 성령강림 이후였다. 결국 완고함을 깨뜨리는 것은 순전한 복음과 그 복음을 깨닫게 하시는 성령님이신 것이다.
문제는 이미 십자가와 성령의 은혜가 부어진 시대의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완고함이다. 경우에 따라선 답이 없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본문이 서늘함을 주는 이유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영이 임한 사람의 마음 상태를 예고했다. ‘부드러운 마음’이다(겔 36:26). 믿음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의존의 마음을 말한다. 이 마음은 하나님의 길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지게 한다. 그래서 변화가 일어난다. 내 마음은 완고한가, 부드러운가. 조금씩이라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가, 아니면 굳은 마음, 굳어진 삶 그대로인가. 나는 과연 고침을 받아가고 있는 건가..를 살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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