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후 3:8-9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나는 시간 속에 존재하며 주님은 영원의 차원에 존재하신다. 시간은 시작과 끝이 있지만 영원은 시간을 초월한 상태를 가리킨다. 영원의 영역에선 얼마나 남았는가, 혹은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가의 구분이 필요없다. 이미 만세 전에 세우셨고 만세 전에 이루셨기 때문이다. 신학적으로는 어제와 내일의 구분없이 항상 ‘하나님의 현재’가 작동하는 신비한 곳이다. 주님에게는 시간보다도 영혼이 더 중요하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방인의 충만한 수’를 언급했다(롬 11:25). 이 수가 주께서 정하신 어느 시점까지 구원받을 영혼들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마감하는 숫자 또한 섭리 가운데 이미 정해졌다고 보아야 한다. 그래서 챙기시기로 작정한 마지막 이방인이 구원을 받으면 심판의 일정이 펼쳐지게 되는 것이다. 지금 종말의 시계는 어느 시점에 와있을까. 때의 문제는 하나님의 전적 소관이기에 가늠할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언제가 되었든 주님의 재림과 심판의 때는 반드시 닥쳐 올 것이라는 점이다.
구원의 섭리를 설명할 때, 칼빈은 예정을 말하고 웨슬레는 선택을 말했다. 영원의 영역에선 구원얻을 자를 이미 보셨기에 예정이라 할 수 있지만 시간의 영역에선 구원받는 과정에서 인간의 선택이작용한다. 물론 그 선택은 성령의 역사하심에서 온 것이다. 그런데 어떤 영혼에게는 선택하게 하시는 그 은혜가 주어지지 않는다. 하나님 주권의 영역이다. 중요한 건 회개다. 나도 회개해야 하고 이웃도 회개하게 해야한다. 오래 참고 계실 때 그리해야 한다. 움직이기 어려울 땐 중보라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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