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11:36

단 11:36 그 왕은 자기 마음대로 행하며 스스로 높여 모든 신보다 크다 하며 비상한 말로 신들의 신을 대적하며 형통하기를 분노하심이 그칠 때까지 하리니 이는 그 작정된 일을 반드시 이룰 것임이라


이 대목부터는 안티오쿠스 4세의 시대를 넘어 멀리 마지막 때를 보여주신 거 같다.

스스로 높여 모든 신보다 크다 할 존재는 적그리스도를 연상케 한다. 그의 죄악은 하늘을 찌른다. 그러나 그에게도 끝장날 때가 닥친다. 단 11:45 ‘그가 장막궁전을 바다와 영화롭고 거룩한 산 사이에 세울 것이나 그의 종말이 이르리니 도와 줄 자가 없으리라’ 그는 불경건의 절정에서 영원히 추락한다.


다니엘의 예언은 물질주의 세계관에 젖어있는 사람에게 관점의 변화를 촉구한다. 광대한 영토의 정복과 금은보화, 장막궁전 등은 창졸간에 안개처럼 사라진다. 하나님을 따르는 이들과 진선미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능력있게 선을 이루려하는 부분이 있겠지만 여전히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하여 심판의 때를 향한다. 그리고 어둠의 세력은 망하기 전까지 계속 기승을 부릴 것이다.


능력과 실력을 키워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데스티니를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하나님을 떠나 사는 이들의 파워나 호사에 대해선 부러워할 것이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재물과 권력을 가진 자를 부러워하지 않음이 실력없는 자의 시기어린 어깃장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영생을 얻은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나와야 한다. 그 바탕에서 실력을 키워 요셉이나 다니엘처럼 쓰임받아야 한다. 은정의 다음세대들이 그렇게 자라기를 소망하며 중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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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 6:10 그러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위로를 받고 그칠 줄 모르는 고통 가운데서도 기뻐하는 것은 내가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하지 아니하였음이라 4절에서 욥은 자신의 고통을 전능자의 화살로 비유한다. 하나님이 자신을 대적하신다고 여기는 것이다. 어느 정도는 그간의 경건에서 오는 자신감의 반응일 수도 있다. 만일 죄책이 가득했다면 전능자의 채찍으로 인정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