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재우

성막이야기(4)-성막문


출 27:14-16

14 문 이쪽을 위하여 포장이 열다섯 규빗이며 그 기둥이 셋이요 받침이 셋이요 15 문 저쪽을 위하여도 포장이 열다섯 규빗이며 그 기둥이 셋이요 받침이 셋이며 16 뜰 문을 위하여는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로 수 놓아 짠 스무 규빗의 휘장이 있게 할지니 그 기둥이 넷이요 받침이 넷이며

성막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은 성막의 동편에 위치해 있었고 폭 20규빗(10m), 높이 5규빗(2.5m)로문턱이 없이 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 큰 문이었다. 그리고 그 문은 가늘고 길게 꼰 흰색 베실과 청색, 자색, 홍색실로 짜져 있었다. 성막에서 제사를 지내고자 하는 사람이 제물을 가지고 성막을 향해서 갈 때는 성막 문이 동편에 위치하고 있어서 서쪽을 보고 들어가게 된다. 서쪽은 해가 지는 곳, 영적으로는 어두움이 있는 곳이다. 반면 제사 후 나갈 때는 동쪽을 바라보면서 걸어 나간다. 해가 뜨는 곳을 향해 나가는 것이다. 들어올 때는 어두웠는데 나갈 때는 밝아지는 것이다. 우리 역시 교회에 들어 올 때는 대체적으로 어두운 얼굴로 들어오게 된다. 죄와 걱정과 염려와 근심 가운데 쌓여서 들어오는 것이다. 그런데 은혜 받고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면서 얼굴이 밝아진다. 집회를 인도하다보면 첫날이 가장 힘들다. 참가자들의 얼굴에 어두운 기운이 가득할 때가 많다. 첫날 집회하면서 그것을 거두어내야 한다. 그러다 점차 둘째, 셋째날 지나면서 서서히 얼굴이 밝아지는 것을 보게 된다. 찬양의 분위기도 달라져서 마지막날은 찬양하면서 서로 뛰며 얼싸안고 신바람을 낸다. 영적으로 어두움이 걷혀진 것이다. 성소에서 죄를 사함받고 성막문을 통해서 다시 세상에 나갈 때는 떠오르는 태양을 보고 나가는 것이다.

성막에는 오직 하나의 문 밖에는 없다. 성막을 둘러싸고 12지파에 속한 2백 만 명 이상의 인구가 포진해있고 제사를 드리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각양 다양한 많은 제물을 가지고 나아오지만 성막 안에 들어올 때는 오직 하나의 문을 통과해야 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0장 9절에서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문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예수님 만나면 구원을 받을 뿐만 아니라 꼴도 얻게 되는 것이다. 즉, 축복받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또 요한복음 14:6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했다. 예수님을 만나면 사방이 막힌 환경이라도 길이 열린다. 송아지가 어미 소와 떨어져서 길을 헤메다 사방이 막힌 벽에 부딪혔다. 길을 잃어 헤멜 때 송아지는 음메~하고 고개를 들면서 울게 된다. 그 때 어미 소가 우는 소리를 듣고 자기 새끼를 찾아 나선다. 마찬가지로 인생의 길이 막혔을 때 하늘을 보고 기도하면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살펴주시는 것을 믿어야 한다. 예수님만이 참된 진리이시고 생명이 되신다. 예수님께서 모든 문제의 해답이 되신다는 것이다. 영혼의 문제 뿐만 아니라 삶의 모든 문제의 해결의 문이 되시고 해답이 되시는 것이다. 사도행전 4:12에는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고 했다. 예수님의 이름 이외에 구원을 받게 할 다른 이름은 없다. 오직 예수만이 구원의 문이시고 길이시다. 예수님을 말하지 않고 구원이나 신과의 만남을 얘기한다면 모두 다 거짓이다.

하나님은 거룩하고 공의로운 분이시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우리의 거룩하지 못하거나 공의롭지 못한 죄가 청산되어야 하는데,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죄를 청산할 수 없다. 예수님만이 십자가 통해서 죄를 대속하실 수 있는 것이다. 오직 십자가의 달리신 예수님이 아니고는 구원의 길은 없다. 예수님 이외의 불교, 이슬람 등 많은 종교가 있어도 다른 구원의 문은 없다.

성막 문은 청색, 자색, 홍색, 흰색 실을 짜서 만들었다. 성막 문을 만드는데 쓰인 4가지 색깔의 실은 예수님의 성품과 사역을 상징하고 있다. 예수님의 행적을 기록한 것을 ‘복음서’라고 하는데 신약성경에는 4복음서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각기 다른 4복음서를 통해 예수님의 다양한 사역과 행적을 기록하게 하셨다. 먼저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신성을 증거하고 있다. 요한복음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로 시작한다. 요한복음의 태초는 창세기에 기록된 태초보다 더 앞서고 근원적이다. 영원 전부터 말씀이 있었는데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서 오신 분이 예수님이신 것이다. 성막 문에 쓰인 청색실은 땅의 영역이 아닌 하늘의 영역인 예수님의 신성을 상징하는 것이다. 두 번째, 성막 문에 쓰인 자색실은 예수님의 왕권을 상징한다. 옛날 왕들은 자색 옷을 주로 입었다. 이와 연관해서 복음서 중 마태복음은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증거하고 있다. 세 번째, 홍색실은 붉은 피를 상징한다. 고난당하신 예수님을 상징하는 것이다. 복음서 중에서는 마가복음이 고난당하신 예수님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 네 번째, 흰색실은 거룩을 상징한다. 복음서 중에서는 누가복음이 거룩하신 예수님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 이 4가지 색은 예수님의 성품과 사역을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문을 통해서 성소에 들어가는 사람의 마음가짐은 어때야 할까? 교회는 성전이고 하나님의 임재가 임하는 공식장소지만 골방도 얼마든지 성소가 될 수 있다. 어디든지 하나님의 영이 임하시는 곳은 성소가 된다. 시편 100:4에는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라고 했다. 이 말씀에서 궁정은 왕이 사는 왕궁이 아닌 하나님의 전을 말한다. 하나님의 전에 문을 통해서 들어갈 때는 찬송함과 감사의 마음이 있어야 한다. 문제는 교회에 예배드리고 기도하러 나오기는 하지만 ‘감사’와 ‘찬송’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원망과 탄식에 사무쳐서 나올 때가 많다는 것이다. 어느 곳이든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성소에 나아갈 때는 감사와 찬송의 마음으로 나아가야 한다. 감사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일(Action)- 구속하시고 필요를 채워주시고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것에 대해서 감사하는 것이다. 반면 찬송함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인가 해주시지 않아도 하나님 그분 자체를 찬양하는 것이다. 인자하시고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성품과 속성(character)을 찬송하는 것이다. 시편 24:7-9에는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강하고 능한 야훼시요 전쟁에 능한 야훼시로다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라고 했다. 이 말씀은 다윗이 하나님의 법궤가 다윗성에 들어가는 모습을 시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시편에서 나오는 문이라는 것은 성소의 문을 의미한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성소의 문을 통해서 법궤가 장막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법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물품이다. 우리는 그분을 찬송과 감사함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때 문이 열리는 것이다. 성전에 나와서 기도할 때에 먼저 우리는 감사와 찬양의 마음 상태가 되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마음이 하나님께 집중되지 않고 문제에 집중되어서 원망과 불평의 그늘을 벗어나기 힘들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모든 생활처소가 성소가 되게 하자. 다윗은 광야에서도 성소를 구했다. 지나가는 여행길이었던 베델에서 문득 하나님을 만났던 야곱처럼 인생의 광야길 어디에서든 하나님은 우리를 만나주실 수 있다. 광야가 성소가 되게 하자.

#정재우Joshu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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