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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16:8~9


16:8-9 넷째 천사가 그 대접을 해에 쏟으매 해가 권세를 받아 불로 사람들을 태우니 사람들이 크게 태움에 태워진지라 이 재앙들을 행하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이름을 비방하며 또 회개하지 아니하고 주께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더라

하나님의 의가 드러나고 재앙이 떨어지는데도 회개하지 않는 완악함의 모습이다. 처음부터 하나님의 길과 다른 길을 가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모습이다. 그리스도의 마음이 아니라 사탄의 마음을 받은 자들의 모습이다. 가롯 유다는 후회라도 했지만 이들에게는 그런 여지도 없다.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것은 완악함이다. 기록된 사람에게 나타나는 것은 애통함이다.

애통함은 은혜의 역설적 표시이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의를 모른다면 애통해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의 에 비추어진 자신의 연약함을 절감할 때, 힘쓰고 애써도 그 의를 이루기에 무력한 존재임을 깨달았을 때 애통함은 피할 수 없다. 그래서 애통함은 은혜와 자비에 기대게 하는 것이다. 애통하는 자가 복되다 하신 이유이다. 애통함이 없으면 하나님은 깊이 만날 수 없다.

고난이나 고달픈 상황이 닥칠 때 나의 마음은 애통했는가, 완악했는가. 완악까지는 안가더라도 ‘왜?’라고 고개를 쳐들고 고집스럽게 행하지는 않았는가. 고난은 나의 연약함이든, 나를 둘러싼 세상의 죄스러움이든 깨우쳐 알고 경성하며 회개하라는 신호이다. 꼭 특정한 죄가 있어서만이 아니라 방향을 틀어 새롭게 하나님으로 향하라는 갱신의 촉구일 수도 있다. 조금만 돌이켜 살펴도 애통할 수 밖에 없는 존재임을 깨달으며 기도의 옷깃을 여민다.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긍휼과 자비가 늘 감사합니다. 성찰이 부족한 저를 깨우치사 애통의 마음으로 성령님의 도우심을 얻게 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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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우Joshu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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