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재우

매일 큐티 12.20 ㅣ시편 69:29-32


시 69:29-32 오직 나는 가난하고 슬프오니 하나님이여 주의 구원으로 나를 높이소서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위대하시다 하리니 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 곤고한 자가 이를 보고 기뻐하나니 하나님을 찾는 너희들아 너희 마음을 소생하게 할지어다

가난하다고 여겨질 때, 슬픈 마음이 솟구칠 때 그런 마음들이 눙쳐 다니도록 놓아두면 더 힘들어진다. 어떻게든 구원을 베푸실 하나님께 마음의 시선을 두려해야 한다. 출애굽 1세대들이 거칠은 광야길로 인해 불평하다가 불뱀에 물려 사상자들이 속출할 때 하나님은 모세더러 놋뱀을 만들어 장대에 매달고 바라보라 하셨다. 바라보는 자는 죽기 직전이라도 나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단지 바라봄으로 낫는 것이다. 가난하고 슬프오니... 죽겠습니다가 아니라 주의 구원으로 높여주소서 한다.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한다 했다. 마음의 시선을 주님께 두는 것이다. 사방이 막혀도 위는 트여 있다. 마음을 위에 계신 하나님에게 두고 찬양하며 감사하면 구원역사가 일어난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면 하나님의 구원을 볼 수 있게 된다. 이것은 세상 논리로는 이해불가한 일이다. 하나님이 없는 사람은 가난하고 슬플 때 대책이 없다. 당할 수 밖에 없고 겪어 낼 수 밖에 없다. 감사할 일들을 기대할 수 없고 찬양의 대상을 알지못하기에 찬양 또한 할 수 없다. 그래서 원망이나 푸념, 자조감에 빠져서 짐스런 길을 걸어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다르다. 하나님께서 아버지가 되셔서 나서주신다. 가난하고 슬플 때 높여지는 일들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짐에 눌린 파리한 영혼이 아니라 소생한 영혼으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가난하고 슬플 때일지라도 감사하며 찬양해야 할 이유인 것이다.

*은정 가족들에게

놋뱀을 매단 장대는 갈보리의 십자가를 상징합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볼 때, 십자가에서 베푸신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할 때, 먼저는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임하고 그 다음, 구체적인 응답이 환경에 따라옵니다. 어려울 때조차도 신뢰함으로 올려드리는 감사는 하나님을 감동시킬 것입니다. 거기에서 참 믿음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정재우Joshu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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