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재우

매일 큐티 12.15 ㅣ시편 68:15-16


시 68:15-16 바산의 산은 하나님의 산임이여 바산의 산은 높은 산이로다. 너희 높은 산들아 어찌하여 하나님이 계시려 하는 산을 시기하여 보느냐 진실로 여호와께서 이 산에 영원히 계시리로다

바산의 산은 우상이 자리잡았던 산이었다. 오랜 세월 가나안문화의 상징이었다. 가나안 문화의 자랑이자 바탕이었다. 가나안 사람들은 그 산을 보며 자랐고, 그 산에서 우상을 숭배하며 자신들의 정체성을 구성했다. 그런 산이 하나님의 산이 된다. 하나님은 그런 산들이 당신이 머물 수 있는 곳이 되기를 원하셨다. 원래는 하나님이 만드신 하나님의 산이었다. 아담이 타락하면서, 마귀가 세상 임금이 되면서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도 좋았던 바산의 산 꼭대기에 우상들이 하나 둘 씩 자리잡기 시작했던 것이다. 바산의 산이 하나님의 산이 된 것은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하면서부터였다. 거짓된 우상과 하나님에 대해 무지했던 교만의 단들이 무너지면서 그 산은 여호와께서 영원히 거하시는 산이 된 것이다.

출애굽은 중생을 의미한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은 중생한 그리스도인들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인은 단지 애굽에서 나온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가나안을 정복하여 바산에 있는 우상의 단들이 무너지게 해서 그 곳에 하나님의 영광이 회복되게 하여야 하는 것이다. 구원 역사가 나의 내면에서만 그치거나 나의 삶의 변화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상문화에 쩔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자리에까지 가야 하는 것이다. 그 자리에 가는 것은 수월치는 않다. 나의 신앙 하나도 간수하기 쉽지않은 현실에서 세상문화와 영적 기후를 바꾼다는 것은 녹록치 않은 일이다. 그러나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하고 가나안의 문화를 바꿔내야 했듯 그리스도인의 데스티니는 내면과 안방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마당과 행길과 광장에까지 이르러야 한다. 이스라엘은 모세 때에 이루지 못한 그 소명을 여호수아 때 이룬다.

모세를 통해 하나님을 만난 이스라엘은 애굽에 그대로 머물지 않았다. 광야에서도 그치지 않았다. 그들은 가나안에 이르렀고 하나님의 성전을 세웠다.

*은정 가족들에게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바산의 산들이 하나님의 산이 되는 것을 기대하십니다. 우선 내가 먼저 복음으로 바뀌어야 하고, 그 다음 바산의 산들이 여호와를 인정하는 변화가 있도록 힘써야 합니다.하나님은 살아계시며 우리를 도우십니다. 바산의 산이 높다해도 하나님 아래의 산입니다.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람들을 사랑함으로 바산의 산들을 바꾸어 나갈 수 있습니다. 열방에 하나님을 증거합시다.

#정재우Joshu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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