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재우

사 12:2-3(2017년 9월 2일)


사 12:2-3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세상은 물질계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보이는 것들이 가치관의 중심에 있고 보이는 것들에 의존하며 살아간다. 우상은 물질계를 활성화하는 수단이었다. 간혹 정신계의 고상함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있지만 물질계의 대세를 뒤집지는 못한다. 이런 세상에서 알지도 못했고 보이지도 않는 하나님을 왕으로, 주인으로 섬기는 삶을 산다는 것은 유별나다. 이스라엘은 그 유별함을 위해 부름받은 백성이다. 그네들은 보이지않는 하나님을 섬기며, 그 분의 말씀대로 살아야 했다. 우상과 다른 점은 거룩과 경건이다. 거룩과 경건은 윤리적인 색채를 띠더라도 본질은 구별됨에 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산다는 표식이다. 그런 표식 자체, 그런 유별남 자체가 사람들의 주목을 끌며 하나님에게 시선을 돌리게 했다. 우상은 거룩과 경건이 없다. 우상을 찾는 사람들은 돈의 우물에서 기쁨을 건지려 한다.

거룩과 우상의 기로에서 이스라엘은 후자를 선택했다. 물질계에 잡혀버린 것이다. 그렇게 되면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도 관계는 없다. 물질계에 잡힌 마음으로 하나님을 부르는 것은 하나님조차도 우상의 수준으로 격하하는 불경의 죄가 된다. 하나님께서 내내 이스라엘을 경고하신 이유이다. 야훼신앙은 삶을 편하게 하는 추가적인 방편이 아니다. 야훼신앙은 구별됨과 유별남을 본질로 한다. 그 영역에 마음이 들어서서 '남은 자'들이 가졌던 중심을 가질 때 비로소 하나님과 통하는 관계가 열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열림의 증거가 오늘 본문이다. 보이는 것들이 아니라 주 여호와께서 힘이며 노래가 되는 마음이다.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에서 물을 길으려면 죄인됨에 대한 자각이 있어서 은혜의 고마움을 알아야 하며, 그 은혜의식으로 세상풍조를 정리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창조주와 불화의 상태에선 두려움을 가질 수 밖에 없지만 은혜와 사랑을 통해 화해가 되면 기쁨이 온다. 화해와 화목은 노래를 부르게 하고 기쁨을 가지게 하기 때문이다. 은혜와 사랑의 하나님 때문에 노래하며 그 마음에 기쁨이 대세가 된다는 것은 진정한 축복이다. 남은 자들은 그런 마음을 가졌다. 하나님 까닭에 구별됨과 유별남을 기꺼이 기쁨으로 걸머지는 사람에겐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도우심이 작용한다.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는 뒷배로 역할하신다. 물질계의 만족이 아니라 하나님을 증거하는 역할 때문이다. 자식도 철들은 놈이 있고 철부지가 있다. 둘 다 자식이기에 사랑으로 살피지만 부모 입장에선 수준 차를 느낀다. 부모의 고마움을 알고 다가오는지, 용돈 때문에 다가오는지를 우리도 알 수 있지 않던가?

목회조차도 철부지의 마음으로 할 때가 적지않았다. 어린 아이들조차도 하나님만이 구원이심을 알게 되는 '그 날'이 오기 전에 알아서 회개하고 남은 자의 길을 굳건히 가도록 힘써야겠다. 나의 삶에, 은정에 이런 일편단심과 기쁨이 하수처럼 흐르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정재우Joshu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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