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재우

사 10:21-22(2017년 8월 31일)


사 10:21-22 남은 자 곧 야곱의 남은 자가 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 이스라엘이여 네 백성이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돌아오리니 넘치는 공의로 파멸이 작정되었음이라

'남은 자'란 환경이 어려워도 하나님에 대한 신실한 사랑으로 순종하며 따른 자를 말한다. 핍박을 받을지언정 말씀의 길을 따르는 사람들이다. 엘리야 시절 하나님이 숨겨둔 7천 명 같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신앙을 위해 안락함을 버린 사람들이다. 일부러 고생을 사서했다는 것이 아니라 신앙을 무시하거나 신앙을 버리라는 세상과의 타협을 거부한 것이다. '이스라엘의 백성이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돌아오리니..' 이는 마치 교회다니는 사람들이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신실한 자만 돌아오리니.. 라는 말처럼 들린다. 이스라엘 역사는 마치 남은 자를 걸러내기 위한 역사처럼 보인다.

남은 자들에게서 볼 수 있는 가장 큰 강점은 무엇일까?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일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세상과의 타협을 거부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필요하다면 초가삼간에도 만족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하는 길을 가지 않는 것이다. 선민 중에서 남은 자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 중에 신실한 자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 신실한 자는 누구보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며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의 길을 걷는 사람이다. 그는 세상적 가치관을 경계한다. 경계할 뿐만 아니라 타협을 거부한다. 그 통에 많은 불편을 겪어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택을 하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을 가는 사람이다.

남은 자는 복음적 삶을 사는 사람이다. 완벽하게 살아내다기보다 최선을 다해 복음적 삶을 살려 힘쓰는 사람이다. 복음적 삶이란 말로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통해 하나님의 존재와 영광이 드러나는 삶을 말한다. 그런 삶은 삶 자체가 복음과 같은 기능을 한다. 그런 삶은 사람들에게 궁금증을 일으키게 한다. 무엇때문에 그런 삶을 사는지, 어떻게 그런 삶을 살 수 있는지 등의 질문을 일으키면서 하나님을 소개하는 삶을 산다. 어떻게 그렇게 돈을 많이 벌고 좋은 지위를 얻었냐는 질문이 아니다. 세상에는 그런 질문이 홍수를 이룬다. 세상에서 넘치는 것이 교회로까지 흘러들어왔다. 질문의 초점이 달라야 한다. 어떻게 고난 중에도 찬양하며, 어떻게 그렇게 인내할 수 있으며, 어떻게 그렇게 용서할 수 있으며, 어떻게 돈과 지위가 있음에도 그렇게 섬기는 삶을 사느냐는 질문을 받아야 한다.

은정은 이 시대의 남은 자들의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남은 자의 서클에 들도록 힘써야 한다. 그렇게 살다가.. 하나님 존재와 사랑을 드러내다가 천국가면 되는 것이다. 남은 자들의 교회, 괜찮은 이름이다. 남은 자에 속하는 은총을 굳게 붙들 것이다.

#정재우Joshu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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