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재우

2017년 8월 10일


시 49:16-17 사람이 치부하여 그의 집의 영광이 더할 때에 너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그가 죽으매 가져가는 것이 없고 그의 영광이 그를 따라 내려가지 못함이로다

정서적으로 병들지 않는 한 치부하는 일은 모든 이들의 관심사이다. 민주주의 사회가 계급사회처럼 변질된 이면에는 돈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치부하면 능력자처럼 간주되고 특별한 사람처럼 인정받는다. 돈많은 자가 왕처럼 행세하는 세상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을 두려워말라시는 것이다. 재물과 관련해서는 길게 보아야 한다. 죽음 건너편까지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죽음 건너편을 보지못하면 치부한 사람이 부럽게 보일 수 밖에 없다. 재물은 영적인 세계도, 죽음 건너편도 가리워버리는 희한한 능력이 있다. 마귀적 능력이고 미혹하는 능력이다. 마귀의 재물작전은 높은 성공률을 자랑한다.

재물에 대해선 확고한 각오가 필요하다. 어중간하면 끌려가는 쪽에 속하기 십상이다. 재물을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다. 재물에 대한 마귀적 인식의 흔적을 버려야 한다는 뜻이다. 내면을 확실히 세탁하고 철저하게 예수님을 본받아야 한다. 예수님께서 어디 권세자나 부자들에게 기죽으신 적이 있으시던가? 우리는 그런 기세로 살아야 한다. 신앙과 사랑의 마음으로 세상을 지긋이 누르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사랑없는 신앙은 질투처럼 오해될 수 있고 신앙없는 사랑은 속없이 좋은 것처럼 비춰지기 쉽다. 신앙과 사랑의 마음으로 지긋이 대하는 것이다. 그런 내공은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것이 좋다. 부자연스러운 것도 세상애착의 또 다른 표현이기 쉽기 때문이다.

성경은 치부에도 영광이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 영광은 죽기 전까지다. 사람은 그런 영광이라도 손에 넣으려고 안달이다. 죽음 건너편을 모르거나 못보기 때문이다. 죽음 건너편 때문에 죽음 이편을 다스리는 것이 신앙의 본질이다. 몰트만이라는 신학자는 그런 자세를 '희망의 선취'라고 했다. 그것은 현재를 개선하고 개혁할 수 있는 동력을 제공한다. 하나님께서 요한에게 계시록을 통해 '장차 있을 일'을 기록하라 하신 이유이기도 하다. 이를 아는 사람은 많다. 이제는 아는 그대로 써먹는 사람이 많이 나와야 한다. 은정이 그런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한다. 희망의 공동체, 희망의 선취를 동력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공동체, 치부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에 인생을 거는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한다.

주님, 죽음 건너편에 따라가지 못할 영광이 아니라 영원토록 별과 같이 빛날 영광을 소망합니다.

#정재우Joshu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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