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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의 문을 열어 보세요


 

1990년대 초반, 영국에서 목회하면서 유럽문화를 접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의 대외관계는 미국에 많이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미국이나 가까운 일본 이외에 다른 선진국들에 대해서는 어슴프레한 주변지식 정도를 알고 있을 뿐 가깝게 느껴지지 않았던 때였습니다. 그러다가 영국에 건너가게 되었습니다. 대부분 그런 것처럼 일종의 문화충격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무엇보다 충격의 폭이 컸던 것은 유럽인들이 가지고 있던 아시아에 대한 인식이었습니다. 그네들에게 있어 아시아인이란 거의 인도를 비롯한 중동, 서아시아 사람들을 의미했습니다. 그 때 저는 소위 한반도나 일본을 가리키는 ‘극동’(Far East)이라는 단어가 지닌 지역성의 개념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관점에선 우리나라는 동쪽 끝에 있는 작은 나라일 뿐이었습니다. 학부 시절 정치외교학을 전공했던 저는 학창시절부터 극동이라는 단어가 지극히 서구중심적이며, 식민주의적인 분류임을 성토한 적이 있을 정도로 민족적인 자긍심을 강조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서구 한 복판에 떨어져 살게 되었을 때, 서아시아 사람들에게조차 밀릴 정도의 열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공항의 문을 열고 나섰더니 우리나라와는 또 다른, 어마어마한 세계가 존재하고 있었고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은 지구상에 언어를 가지고 있는 약 3만 5천개 종족 중의 하나였고, 전 세계 250개 국가 중의 하나였던 것입니다.

종종 신앙을 가진다는 것이 꼭 국제공항의 문을 열고 외국에 나가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생각보다 어마어마한 세계가 존재하며 펼쳐지고 있다는 것을 알면 관점 - 특히 세계관과 같은 - 의 변화는 불가피합니다. 더욱이 다른 나라들의 존재가 우리의 생존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치기어린 민족감정의 허실을 따져보게도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근대/현대사는 외세에 의해 좌우되었던 것이 사실이지요. 일본에 의해, 그 뒤에는 소련과 미국에 의해, 심지어 한국전쟁 때엔 중공군의 개입에 이르기까지 그렇습니다. 지금 구가하고 있는 놀라운 경제성장도 외국에서 우리나라 제품을 사주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임을 누구도 부인하지 않습니다. 공항 문을 열고나서니 그 실체가 분명해지고 사실관계가 명확해지는 것이었습니다.

신앙의 문이 꼭 공항의 문과 같습니다. 신앙의 문, 그 문을 열고나서면 어마어마한 세계가 존재하고 있고 펼쳐지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더 나아가 그 세계, 보이지 않는 그러나 엄연하게 현존하는 영적인 세계가 우리 개개인의 삶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지 금새 알 수 있는 것이지요. 이 글을 읽는 독자 분들에게 간곡한 마음으로 권합니다. 신앙의 문, 영원의 문을 두드리십시오. 그 문을 열고 한 번 나서 보십시오. 어마어마한 세계의 현존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음을 아시게 될 것입니다. 교회는 이를테면 그 세계에 대해 안내하는 안내소와 같습니다. 마치 공항이나 유명 관광지에 안내소(Information Center)가 존재하듯이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영원에서 오는 행복과 축복을 전하는 배달소이기도 합니다. 영원의 문을 두드려 보십시오. 여러분의 인생이 달라지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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