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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귐의 기도


 

영성가 헨리 나우웬은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기도에 집중하는 일부 그리스도인들을 ‘산타클로스를 기다리는 어린 아이들’로 비유했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성탄절에 산타 할아버지를 기다리는 이유는 산타를 만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가 줄 선물 때문입니다. 선물만 받으면 산타는 곧 아이들에게 잊혀진 존재가 됩니다. 기도에 대한 자기중심성에서 오는 부작용을 지적한 예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 필요한 많은 것들과 해결 받을 문제들을 놓고 기도합니다. 명백히 기도는 하나님과 만나는 길입니다. 기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도움을 받고 축복을 받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거기에서 또 다른 곁길로 빠질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응답과 축복에만 관심을 집중할 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드리는 간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그러나 단순한 해결청부사처럼 간주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의 사이에서 원하시는 것은 ‘사귐’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요일 1:3)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기도 가운데 먼저 우리와 사귐을 가지길 원하십니다. 하나님과의 사귐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시는 것에 따라 그분과의 관계가 달라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응답을 주시는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주시는 응답 중 어떤 것이 더 소중할까요? 물론 응답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나의 기도에 대한 응답 여부에 영향 받지 않고 여전히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우선적이어야 합니다. 응답을 안주셔도 여전히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소중한 것이 진정한 믿음의 모습입니다.

황금비율 또는 황금분할로 불리우는 세로와 가로 1:1.618 비율은 고대 그리스인들이 발견한 기하학적으로 가장 조화가 잡힌 비율입니다. 이런 비율로 만들어진 그림이나 건축물을 볼 때 가장 안정감을 느낍니다. 신국판 책이나 십자가, 신용카드, 비너스 여신상 등은 가장 이상적인 비율로서 안정감과 아름다움을 주는 비율입니다. 동일하게 기도에도 황금비율이 있습니다. 사귐의 틀 안에서 주님을 향한 간구하는 기도는 그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과 기도를 드리는 우리 모두 안정감을 줍니다. 반대로 사귐이 전제되지 않고 응답에만 초점을 모으게 될 때, 응답이 없는 상황이 닥치면 견뎌낼 영적 내공이 약해집니다. 응답에만 관심이 있기에, 응답이 없다고 판단되면 하나님도 소용없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주님과의 관계로 시선을 돌리게 하기 위해 응답을 조절하시기도 합니다. 그럴때 사귐이 바탕이 되어 있다면 환경에 상관없이 은혜의 안정권에서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온전한 사귐은 하나님과 나 사이에 소통을 통해 이뤄집니다. 간절하더라도 일방적으로 기도하기만 해서도 안되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어야 합니다. 종종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에 대해 부담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그 원인은 ‘어떻게 듣는가’ 하는 문제와 ‘들었을 때 따르는 부담감’때문입니다. ‘어떻게 듣는가’하는 문제는 성경말씀을 적용할 때 그 분의 음성을 듣는 것과 같은 효과를 가져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문서로 기록한 것이 성경입니다. 그 분의 계시적 음성이 기록된 것입니다. 또한 말씀을 묵상할 때 인격적인 소통을 느끼게 하는 성령의 내적 감동이 있습니다. 이런 종류의 내적 감동을 놓치지 않으려면 ‘집중력’이 필요합니다. 집중과 순종이 있다면 음성 듣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가지신 그분이 함께 하시기에 충분한 사귐을 누릴 수 있으며 필요를 공급받는 문제에 대해서도 느긋할 수 있습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_빌 4:6-7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주님과의 사귐 안에서 아뢰십시오. 그 사귐이면 충분하다는 영적 확신과 은혜의식으로 서 있는 것이 온전한 믿음입니다. 때론 시험 당할 때 그 믿음을 증명하면서 살아간다면 주권자되신 하나님께서 삶을 책임져 주시는 것을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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