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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약함을 도우시는 성령


 

찬송 : 534장 주님 찾아오셨네 /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로마서 8:26~30

옛날 어떤 사람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왕으로부터 사형을 언도 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죽기 전 마지막 소원을 비는 자리에서 임금님께 드릴 것이 있으니 직접 드릴 수 있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더니 품속에서 금덩이 하나를 꺼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임금님, 이것은 희귀한 금덩이여서 이 금덩이를 심으면 나무가 되어서 금이 열립니다. 그런데 죄를 지은 사람이 심으면 금 열매가 열리지 않습니다. 그간 아무리 죄가 없는 사람을 찾으려 해도 없어서 보관하고 있다가 이렇게 임금님을 만나니 이제야 이것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죄가 없는 임금님이 정원에 심어 크게 부귀를 누리십시오.” 이 말을 듣던 임금은 자기가 심었다가는 금이 안 열리겠다 싶어 옆에 있는 신하에게 금을 넘겼습니다. “나는 이미 금이 많으니까 자네가 심어서 금 열매를 따게나.” 이 신하 얼굴이 하얗게 바뀌었습니다. “아닙니다. 소인도 금이 많습니다.” 그러고는 옆에 있는 동료 신하에게 넘겼습니다. 그렇게 서로 미루다가 결국 임금이 깨달음을 얻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참으로 지혜롭도다. 그 지혜 때문에 너를 방면하노라.” 그리고는 그를 사면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죄 앞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임을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죄를 이기고 승리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인간 스스로는 연약한 존재임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성도의 내면에 옛사람과 새 사람(롬 6:6), 죄의 종과 의의 종(롬 6:16),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갈 5:17), 육신의 생각과 영의 생각(롬 8:6)이 공존하고 있음을 말씀합니다. 그런데 성도의 영적 위치에는 중간지대란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든지 아니면 하나님과 원수가 되든지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인간은 하나님의 길과는 반대되는 길을 선택하고 나아갈 때가 많이 있습니다. 죄의 유혹과 육신의 소욕이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연약한 인간을 위해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성령은 우리의 연약함을 긍휼히 여기시며 우리를 도우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십니다. 성경은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롬 8:26)고 말씀합니다. 성령은 우리의 부정한 행실 때문에 우리를 버리시는 것이 아닙니다. 실패한 우리들을 실망스럽게 보시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의 부정과 실패를 보시고 결국 그것 때문에 우리에게 오신 분으로서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곁에 서신 것이 아니라 우리 속에 함께 거하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고전 3:16)라고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연약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셋째, 우리는 성령을 사모하고 기대하고 간구해야 합니다. 성경은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겔 36:26-27)고 말씀합니다. 그러기에 성령께서 우리로 인해 근심하시지 않게 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4장 30절은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성령을 모시고 근심시키지 않게 하기 위해 노력하면, 어느새 연약한 우리가 성령 안에서 강해져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성령 안에서 기도하며 성령을 위하여 심고 성령으로 영생을 거두는 삶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그 과정에서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완전해지는 역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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