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두멍 영성이야기

 

​물두멍영성 이야기1

우리의 영혼은 정화를 필요로 합니다.

갖은 얼룩이 묻어있기 때문이지요. 우린 대부분 '하지말라' 수준에서 자신감을 찾으려합니다. 그러나 '하라'의 부분은 더 넓고 수준높은 삶을 요구합니다.

수도원의 수도사들이 죄지을 일이 없어 당당할 것 같아도 끊임없이 회개하는 이유는 '하라'의 대목 때문입니다.

물두멍 앞에서 자신의 얼룩을 보는 개인묵상은 개인의 정화를 가져오고, 정원에서의 나눔은 공동체정화라는 시너지를 가져옵니다. 개인의 정화와 공동체의 정화가 구비될 때 하나님은 그 그릇의 상태에 합당한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제사장이 물두멍 앞에 나아가 수족을 씻지않으면 임재하신 성소에 들어갈 수 없었듯 묵상의 자리에 나가지않으면 '깊은데'로 가기 어렵습니다. 제사장이 얼마나 구별된 삶을 살던 사람이었나요. 그래도 늘 씻지않으면 안되는 곳이 물두멍 앞이었습니다.

개인의 영혼과 공동체가 말씀으로 자꾸 정화되어가면 성령의 생수의 강이 열리는 은혜가 임할 것입니다. 생수의 개천이나 생수의 웅덩이가 아니라 세상을 치유하는 생수의 강이 흐르는 것이지요. 우리 은정은 그 초기과정에 있습니다. 열리느냐 아니냐, 개천이냐 강이냐를 좌우하는 기로에 서있다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주님은 정화된 영혼, 정화된 공동체를 쓰십니다.

엡 5:26-27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은정 식구들의 묵상영성의 뿌리내림을 간절히 기원합니다

 

​물두멍영성 이야기2

물두멍영성은 남을 보지않고 나를 봅니다. 남의 얼룩이 아니라 나의 얼룩을 봅니다.

그렇다고 자학이나 강박처럼 자신을 몰아세워서도 안됩니다. 말씀의 거울 앞에 섰을 때 성령께서 주시는 구체적인, 명백한 거리낌을 다루라는 것입니다. 마음 가운데 일어나는 어떤 거리낌은 성령의 재촉에 가까울 때가 많기 때문이지요.

물두멍 영성은 우리 내면에 있는 세상중독을 디톡스하여 정화를 얻게 하는데 그 지향점은 예수님을 닮는데 있습니다.

예수님을 닮는 것이 지극히 중요한 이유는 그 분이 말씀 자체이시며 동시에 하나님의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며 살아야 하는가를 보여주신 분이기에 그렇습니다. 우리에겐 그리스도 형상의 회복의 때가 예비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속사람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지못하면 마귀의 형상을 닮아가게 됩니다. 그 분을 닮아가는 것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물두멍영성은 말씀으로 영혼을 씻는 그 사람으로 하여금 예수님의 향기를 내게 합니다.

고전 2:14-15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내 삶, 내 생각과 말과 행동에서 예수님 향기가 나야 합니다. 종종 하나님 일을 한다면서 거칠게, 또는 날카롭게 하시는 븐들이 있습니다. 바을은 회심하기 전 그리스도인들에게 저승사자처럼 행동했었지요. 배타적이고 고집스럽게 말입니다.

하나님 일도 예수님 향기 내면서 해야 합니다. 말에서도 예수 향기, 행동에서도 예수 향기가 나야 합니다. 그 향기에는 사랑과 자비, 인내, 겸손과 온유 같은 성분들이 함유되어 있지요.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같은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물두멍 영성으로 세상중독과 육성의 물을 빼고 예수님 DNA로 염색됩시다^^

 

​물두멍영성 이야기3

묵상나눔에서 나의 연약함만을 다루는 이유는 타인에 대한 비판이나 지적이 공동체의 신뢰를 쌓는데에는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건전한 비판이 건강하게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은정은 기본바탕이 치유공동체를 지향하기에 지적이나 비판보다는 수용과 격려를 추구합니다.

실질적인 변화가 가장 많이 일어나는 때는 개인이나 공동체가 각각 말씀 앞에 서서 각자가 스스로를 말씀 앞에서 벌거벗기고 말씀대로 교정하는 치열한 영성의 정진이 있을 때입니다 바로 그 때부터 개인은 개인대로, 공동체는 공동체대로 선한 변화의 열매가 나타나는 것이지요. 내가 누군가를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주님의 지적을 받는 자리에 나가는 것이 은정의 물두멍영성입니다.

성전에서 제사장이 물두멍앞에 설 때에는 누구를 데리고 가거나, 누군가를 앞세워 보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혼자 나가고 혼자 그 앞에 섭니다. 그리고는 자기의 수족을 자기가 씻는 것이지요.

운동권에 몸담았던 한 사회운동가가 나이들어 고백한 말이 생각납니다. 전에는 세상이, 다른 누군가가 변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알고보니 나 자신부터 바뀌었어야했다는 고백이었지요. 은정은 나 자신의 변화부터 추구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공동체를 신뢰하며 서로 붙드는 가운데 치유와 회복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딤후 3:16-17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말씀만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합니다. 말씀만이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합니다. 모두가 늘 물두멍 앞에 서야하는 이유입니다. 상식과 인지상정을 넘어서 말씀을 말씀대로 살려하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모든 은정 가족들의 묵상나눔을 보게 되는 그 날을 간절히 소망합니다~

일단.. 안해보셨던 분들은 먼저 다른 분들의 나눔을 꼭 읽어보세요. 같은 본문이라도 각자마다 다른 내용이 얼마든지 나올 수 있음을 발견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묵상 나눔에는 정답이 없는거지요. 물론 성경의 올바른 해석이라는 기준은 지켜야 합니다만 개인의 적용은 각자마다 관점이 다를 수 있지요. 그런 부분을 감안하면서 차츰 자기의 생각을 가질 수 있게 되고 그러면서 나눔의 울타리에 들어오시면 됩니다.

묵상의 정석은 공지내용에 소개되어 있으니 개인묵상 때 잘 적용하시면 됩니다.

​물두멍영성 이야기4

물두멍영성은 묵상하는 영성이요, 남이 아닌 자기 자신의 연약함과 죄를 보고 씻어내는 영성입니다. 그런데 다시 이전의 연약함으로 돌아가지 않으려면 묵상에서 오는 깨달음과 함께 기도가 필요합니다. 깨달음은 지식이요 기도는 동력입니다. 깨달음이 지도의 길을 보게 했다면 그 길로 가게 하는 것은 기도의 힘입니다.
지식은 감정이나 죄성을 이기기 힘듭니다.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라는 탄식은 아는 것이 죄를 밀어내지 못하는데서 오는 결과입니다. 한 때 한국교계를 풍미했던 제자훈련이나 성경공부 붐이 한계를 느낀 것은 바로 실천동력의 문제였습니다. 아는 것, 들은 것은 많은데 실천이 안되는 것입니다. 비판의식은 강해졌는데 정작 중요한 사랑과 인애는 찾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성경지식이 이기심과 죄성, 자기중심적 사고의 힘을 능가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묵상에서 얻는 깨달음이 관념적인 지식보다 낫긴 하지만 이 역시 기도의 힘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고민거리 수준을 넘지 못합니다. 깨달은 대로 잘 안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가르침을 받거나 묵상을 통해 깨달음을 얻게 되면 반드시 기도로 동력을 실어주어야 합니다.

행 2: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초대교회 성도들은 가르침을 받은 후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썼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설교를 듣고 그 다음 기도에 올인했습니다. 오로지..!
은정 가족은 하루 최소한 한 시간은 기도해야 합니다. 즉 한 시간 이상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우리는 시대의 아픔을 치유하고 회복시키기 위해 부름받았습니다. 성령께서 흐르시는 통로가 되려면 기도의 문이 열려 있어야 합니다. 각자가 각자의 골방에서 하루 한 시간 이상은 기도해야 주어진 소임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주보의 기도제목과 정원에서 나눈 기도제목들, 그리고 성령님께 의탁한 방언기도 등을 통해 얼마든지 하루 한 시간 이상은 기도할 수 있습니다. 물두멍을 통과한 제사장은 성소안의 분향단을 간검하지요. 분향단의 향은 하늘로 올라가는 기도를 상징합니다.

계 8:4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은정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들이 많습니다. 그 약속들은 기도를 통해 얻을 수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약속이 주어졌어도 이루어주기를 구하여야 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겔 36:37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물두멍영성은 말씀의 깨달음만 구하지 않습니다. 기도의 동력을 겸비한 영성이 물두멍영성입니다. 묵상과 기도는 함께 갑니다. '그래도..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은정 사색영성의 만개를 위해서, 은혜와 치유의 강이 흐르게 하기위해서, 하나님께 쓰임받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 교우들의 거룩과 행복을 위해서, 각자 받은 바 꿈과 소명의 성취를 위해서 하루 한 시간 이상은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주중 공간의 부재로 인해 더더욱 개인기도에 진력해야 하는 우리입니다.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물두멍영성 이야기5

물두멍영성은 은정의 브랜드영성입니다. 교훈적이고 지식적인 묵상보다 나의 연약함을 다루는 실존적 묵상입니다. 매일의 삶에서 각자 물두멍 앞에선 제사장의 절실함으로 자신을 돌이키며 연약함을 주님 발치에 내려놓고 적용의 자리로 나가는 것입니다. 이런 묵상이 나날이 쌓이면 어느새 나의 영성은 하늘을 향해 올라갑니다. 환경은 그리 변함이 없는 것 같아도 원형계단을 올라가는 것 같이 영성은 깊어지고 성숙해지지요. 은정 가족들은 필수적으로 날마다 물두멍 앞에 서야 합니다. 성숙해지는 길, 아니 사는 길이요 평안으로 향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물두멍 앞자리는 은혜의 이슬비에 옷을 젖게 하는 자리입니다. 은혜의 이슬비지만 매일매일 맞으면서 어느새 은혜장아찌가 되어가게 되는 것이지요. 그리스도의 형상이 회복되고 그리스도의 향기가 조금씩 조금씩 더 강해지게 됩니다.

 

공동체 나눔은 어떤 유익이 있는 것일까요? 앞으로 제가 하려는 사역 중 하나가 글쓰기 치유입니다. 시든 에세이든 형태에 관계없이 글을 쓰면서 내면의 치유를 꾀하는 것이지요. 이미 음악치유나 미술치유처럼 치유프로그램의 한 형태로 자리잡은 분야입니다. 왜 글쓰기가 치유를 가져올까요?

 

먼저는 내면의 상태를 직면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직면, 곧 '드러냄'은 모든 치유의 기초이며 기본입니다. 병원에 가서 약한 부분을 말하지 않거나 보여주지 않고 온전한 치료를 받을 수 없습니다. 상담에서 자신의 내면의 어떠함을 드러내지 않으면 상담의 효과는 거둘 수 없습니다. 직면은 치유의 필수입니다. '글을 씀'은 모호했던 생각을 문장으로 정리하면서 그 실체를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글을 씀'은 어중간하게, 구렁이 담넘듯 하게 하지 않습니다. 명료하게 빛과 어두움을 정리하며 양지와 음지를 구별하게 합니다. 그런 과정에서 어질러진 방을 정리하듯 내면이 정리가 되면서 자신의 진짜 모습을 찾아가게 되는 것이지요. 글쓰기는 마음리셋의 중요한 수단이 됩니다.

 

두번째로, 드러난 것은 치유되거나 변화되기 때문입니다. 병원에서 드러난 부분은 가능한 치료합니다. 주님도 드러난 것을 만지시지요. 우리는 그것을 빛 가운데 행하는 것이라 배웠습니다. 드러내면 빛이 들어옵니다. 인생의 각종 트라우마에 시달린 사람들이 글쓰기를 통해 불행에서 행복으로 전환된 사례는 무수합니다. 진솔한 글쓰기는 처음에는 내가 쓰다가 어느새 글이 나를 쓰는, 글이 나를 새롭게 빚어나가는 단계로 나아가게 하지요. 더우기 살아계신 하나님의 불변의 진리에 비추어 나를 드러냄은 가장 강력한 치유와 변화의 전환점이 됩니다. 진리가 나를 위로하고 나를 치유하고 나를 자유롭게 합니다. 진리 앞에서 - 물두멍 앞에서 - 나를 드러냄은 은혜이고 축복입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의 두뇌유전자 형질을 믿음과 긍정의 형질로 바꾸는 강력한 수단입니다. 매일 말씀에 대해 읽고, 쓰고, 다듬는 묵상패턴은 생각과 마음과 행동과 습관이 달라지게 하는 가장 선하고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야단맞거나 혹독한 연단을 받지않고도 삶의 길을 바꾸어나가는 최고의 방법이지요. 글쓰기는 생각에서 머무는 것과는 비교가 안되는 효과를 가져옵니다. 뭔가를 글로 정리한다는 것은 최강도의 각인과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길을 가다보면 못보던 것을 보게 되고 못느끼던 것을 느끼게 되는 단계에 들어갑니다.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글쓰기의 좋은 점은 깨어있으면서도 꿈을 꿀 수 있다는 것입니다.'라고 말했지요. 해리 포터 시리즈를 터뜨린 조앤 롤링도 괴로운 시절, 자꾸 글을 써가면서 결국은 인기작의 실마리를 끄집어낼 수 있었다하지요. 만약 그녀가 고단한 일상에 파묻혀 끙끙대기만 했다면 그런 대박은 없었을 것이구요, 쪽박 수준을 면치못했을 것입니다. 그냥 글쓰기도 이런 길을 연다면 진리 앞에서 글을 쓰는 것은 얼마나 큰 유익이 있겠습니까?

 

공동체 나눔은 양의 많고 적음을 떠나 우리를 이런 영역으로 인도합니다. 은정의 마당을 통해 열어놓으신 변화와 치유와 형통의 길로 거듭 초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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